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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9 황룡사 9층 목탑이 세계 최고(最高)라고? (2)
  2. 2006/03/29 신라의 랜드마크 - 황룡사 9층 목탑

Posted 2008/02/29 11:58, Filed under: 인문학 산책


오늘자 신문에 실린 글 황룡사 9층 목탑 조기 복원한다.
이 기사 처음에 보면 '세계 최대 높이의 목조 건물로 추정되는 경주 황룡사(皇龍寺) 9층 목탑(높이 82m 추정)의 복원이 770년 만에 적극 추진되고 있다.'라고 나와 있다.
과연 황룡사 9층 목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물이었을까?
황룡사 9층 목탑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예전에 썼던 글이 있으니 참조하시길..
2006/03/29 - [인문학 산책] - 신라의 랜드마크 - 황룡사 9층 목탑 (새 창으로 열기) 

황룡사 9층 탑보다 더 큰 목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존재했다.
먼저 우리나라의 목탑들을 보자
황룡사 9층 탑은 높이가 약 82미터 추정된다. 그에 반해 고구려 때 세워진 평양 청암리사 목탑은 90미터. 역시 평양의 상오리사나 정리사 목탑은 7,80미터로 추정되고 고려말 조선 초에  세워진 지리산 실상사 목탑의 경우 약 85미터로 추정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상사 목탑지

.
또한 하남 동사지 목탑은 높이가 100미터로 추정되는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만 해도 황룡사 목탑보다 크거나 맞먹는 목탑이 여럿이 있었다.
중국에 경우 세계에서 가장 큰 영녕사 목탑이 있었는데 북위 시대인 516년 완공된 이 탑의 높이는 무려 134미터였다.
일본에도 789년 세워진 동대사 목탑은 높이가 100미터였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황룡사 9층 목탑보다 큰 목탑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도 있었음에도 자꾸 세계 최고의 목조건물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애국심으로 비롯된 과장이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아시아 목탑 비교도. 오른쪽부터 중국 영녕사 목탑, 경주 황룡사 목탑, 익산 미륵사지 목탑이다. 위 왼쪽에 그련진 면적만 봐도 엄청난 차이가 보인다. (나라 문화재연구소 문화재 도록 <아스카 후지와라쿄 전> 아사히신문사, 2002)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년 지어진 154미터의 중국 천녕보탑. 영녕사 목탑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성급한 복원도 문제다.
기사를 보면 빠른 시일 내에 복원하겠다는데 여기서 과연 이것이 복원인가 되짚어봐야 한다.
복원이란 '고증'을 통해서 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지만, 사실 황룡사 목탑뿐 아니라 황룡사에 대한 정보는 터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것은 복원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한 창조일뿐이다.
실제로 황룡사 목탑에 대한 복원도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꾸준히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수정 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황룡사탑의 복원도.  좌측 맨 위가 1930년대 후지시마(藤島亥治郎)가 일본 건축학회지인 '建築雜誌'에 실은 최초의 복원도. 오른쪽은 김인호 안, 두 번째 줄 왼쪽부터 장기인 안, 오른쪽 김정수 와 박일남 안, 마지막 줄 왼쪽은 북한 안, 오른쪽은 90년대에 만들어진 김동현 1안과 2안으로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황룡사 모형도는 김동현 안을 따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은 가장 최근인 2001년 고 권종남 교수의 복원도.

이렇게 복원도도 가지각색일 정도로 황룡사 9층 목탑의 형태는 확실하지 않고 또한 내부의 모양은 더욱더 미스터리고 이것을 지을 수 있는 기술조차 아직 없는 상황에서 수천억을 들여 빨리 짓자고 하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박정희 시대 때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지금의 황룡사 터에 시멘트로 지으려고 했던 아찔한 경험과 현재 백제문화단지에 지어진 능산리 사지 5층 목탑이나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 대한 여러 비난 의견에 비추어 볼 때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결정지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의 황룡사 터에 짓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 것이다. 지금도 광화문 복원 공사 중 발견된 터때문에 그 위에 복원하는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데, 확실하지도 않은 모습에서 지금의 황룡사 터 위에 짓는 것은 후대에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2006/05/03 - [인문학 산책] - ''잃어버린 왕국'' 백제가 부활한다...고? (새 창으로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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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2008/02/29 11:58 2008/02/29 11:58


Tag : 목탑, 복원, 황룡사, 황룡사 9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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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꾸꾸꼬얌 2008/04/09 02:10 Delete Reply

    공부좀 하고 글을 쓰십시요. 동대사목탑은 평면 길이가 짧아서 100m 탑 안나옵니다. 과장된 기록이라 이것이죠. 황룡사 목탑은 평면은 그 정도 규모의 높이를 감당할 수 있기에 기록이 신빙성이 있는 것이구요. 북위 영녕사 목탑은 중앙 칸에 벽돌이나 토축으로 코어를 만들었습니다. 그 코어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지만, 100% 순수 목탑은 아닙니다. 현재 남은 중국 전탑 중에 코어는 벽돌로 쌓고 외간은 목조 가구조로 지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사사지 등은 아직 추정입니다. 기록이 없으니깐요. 한변의 길이를 가지고 높이를 완전히 추정할 수 는 없지요. 요즘 조그만 학식으로 이리 저리 자기 주장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큰일입니다.

    1. Re: # 누리 2008/04/09 17:19 Delete

      아침부터 왠 조회수가 많나 했더니 누가 디씨에 링크해서 오신 43분중 한명이시군요.

      실상사 경우 한변의 길이를 가지고 높이를 추정할수 없다면서 동대사목탑의 높이는 한변의 길이 가지고 그 높이가 안 나온다고 부정하니 말이 모순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영녕사 탑 중심 심지가 벽돌인지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전 글에 분명히 그 점을 지적했고 이 글에 그 글을 링크했는데, 링크한 예전 글은 읽고 공부 좀 하라고 하는지요? 거기에 분명히 영녕사탑 이야기가 있는데요. 영녕사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목탑이자 목조건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일본 문화재 도록에도 그렇게 나와 있잖습니까?
      제 주제는 황룡사탑이 무조건 세계 최고의 목조건물이라는 국수주의적 기사를 비판하는겁니다. 달은 안보고 왜 손가락을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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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6/03/29 13:42, Filed under: 인문학 산책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때는 7세기 헌강왕 재위 시절 신라의 수도 금성(현 경주시). 인구 백만이 넘는 국제도시였던 금성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바둑판으로 잘 정리된 넓은 도로위로는 우마차가 끊임없이 오가고 가끔가다 아랍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보였다. 초가하나 없는 도시위로 거대한 탑이 우뚝 서있었으니 이 탑이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인 황룡사 9층탑이었다. 높이 82m. 25층 높이의 빌딩과 맞먹는 당시 세계 최고(最高)의 목조건축물이었다.

거대한 황룡사
황룡사의 역사는 진흥왕 14년(553년) 원래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나 이상히 여겨 절을지으면서 시작됐다. 진흥왕37년(574년) 신라 3대 보물 중 하나인 금동장륙상이 완성됐고 선덕여왕 12년(643년) 역시 신라3대 보물 중 하나인황룡사 9층 목탑이 완성되어 93년의 긴 공사가 끝나고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황룡사만 해도 동서288m, 남북281m, 총면적 2만5천평으로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다. 실제로 황룡사 치미가 182cm나 되는걸로 봐도 그크기가 엄청났음을알 수 있다. (황룡사 치미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크기로 제일 큰 치미는 평양 안악궁 치미다.) 이 치미가 장식된 중금당의크기만 해도 남대문의 6배였다고 한다.
황룡사 중금당. 지붕위에 치미가 보인다. 현재 제일 먼저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거대한 금당안에는 높이 4.8미터의 석가여래삼존상이 있었다. 본존상의 무게가 35,700근 황금만 1만 198푼이 들었다고한다.양옆에는 2구의 보살이 있었는데 무게가 12,000근, 금 1만 136푼이 들었다고 하니 엄청나다. 또한 벽에는 유명한솔거의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이 얼마나 생생한지 새들이 날아와 부딪혀 죽었다고 한다.
범종도 있었는데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보다 4배나 컸었다고 하니 무게만 497,581근이었다고 한다.
거대한 치미. 너무 커서 2개를 이어 붙었다.
황룡사지. 80년대 찍은걸로 추정된다. 현재는 뒤편으로 고층아파트가 자리잡았다.

황룡사 탑의 수난
황룡사 9층탑은 그 거대한 높이때문에 자주 벼락을 맞았으며 또한 지진등에 의해 6차례의 큰 수리가 있었다. 특히 경문왕 11년(871년)에는 지진으로 크게 기운 탑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기도 했다.
하지만 1238년 고려 문종 25년에 몽고의 침입으로 685년동안 온 백성에게 숭앙받았던 이 위대한 탑은 결국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대종은 몽고군이 가지고 가다가 강물에 빠트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강을 지금도 대종천이라고 부른다.
좌-장륙상 대좌    우-황룡사 목탑지

제일 의문이 가는것은 장륙존상인데 많은 서적들이 황룡사가 불탈때 같이 탔다고 잘못 나오고 있지만 조선때 씌여진 '동경잡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조때까지 남아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발굴 조사때도 장륙존상같이 거대한 금속이 녹은 흔적을 전혀 발견못했다. 그렇다면 조선조때까지 남아있던 장륙존상이 어디로 갔을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폐허가 된 황룡사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 민가를 모두 철거만 시키고 방치했다. 1964년 12월 17일 황룡사 9층탑의 사리장치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민가에 의해 보호되던 사리장치가 정부에서 친절하게 철거되고 방치되었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한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이 도굴꾼들은 1966년 그 유명한 불국사 석가탑 도굴 미수사건에 범인들로 석가탑 사건으로 체포되어 여죄 추궁중 황룡사 탑 도굴범으로 드러나 사리엄 장구가 다행히 회수됐다. 이 도굴범 배후에는 삼성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1966년 9월 20일자 동아일보 '도굴단 배후에 대재벌이 있다' 와 2005년 12월 3일 MBC '시사매거진 2580' 보도내용 참조) 하지만 사리병과 사리는 끝내 회수되지 않았다.
도난당했다 되찾은 황룡사 사리함. 여기에 탑의 찰주본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수난을 겪은 황룡사 터는 1976년 4월부터 1983년까지 발굴 조사를 하여 앞에서 말한 거대한 치미를 비롯하여 4만여점의 유물을 수습하고 황룡사가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복원 중 황룡사의 더 큰 위기가 닥치는데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황룡사를 시멘트로 복원하라고 지시를 한것이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황룡사를 그것도 시멘트로 복원하라니!
그렇다면 지금 발굴된 터도 완전히 밀어버려 흔적도 없애야 한다. 박통은 그 전부터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이 별로 없는지 군사문화재는 시멘트로 대충 복원하고 안그런것은 없애도 된다는 식이었다.
그런식으로 엉터리 복원되거나 영영 사라진것을 열거하라면 끝도 없다. 풍납토성, 백제 고분, 백제성, 달성 고분, 현충사, 오죽현, 수원성, 광화문, 덕수궁, 독립문, 신라 절터, 고구려 군사유적 등등..
다행히 박통이 총에 맞아 세상을 뜸으로 이 계획은 없었던 일로 돌아간다. (박통의 죽음으로 보존된 문화재도 꽤 된다. 석촌동 고분등등..)

황룡사 탑은 어떤 탑인가?

황룡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9층 목탑으로 한변의 길이만 22.2m였고 높이가 183척, 상륜부가 42척으로 합해서 225척이었다고 한다. 특이한것은 대부분의 목탑이 겉에서 보면 여러층으로 보이지만 안에서는 하나의 통층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황룡사 탑은 각각의 층이 있어서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올라갈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탑은 원래는 황룡사에 없던것이었는데 당나라로 유학갔던 자장이 태화못가에 나타난 신인에게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근심이 없고 태평할 것이다'라고 하여 선덕여왕에게 구층탑의 건립의 필요성을 말하여 백제의 아비지를 초청하여 만들어지게 된것이다.
9층 탑은 1층부터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 등 아홉나라를 상징하여
이들 나라로부터 침략을 막기위한것이다. 이들 나라중 몇몇 나라의 정체는 수수께끼에 쌓여있다.
높이 82m의 이 목탑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이었다. 이보다 높은 탑은 북위때인 516년 완공된 영녕사 목탑이 있었는데 높이 134m로 여지껏 만들어진 목탑중 가장 높았지만 얼마 안된 534년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모두 타는데 3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영녕사 목탑은 중심에 흑벽돌로 만든 중심 기둥이 있어 쇠못 하나 없이 나무로만 지은 황룡사 탑에는 기술적으로 딸린다.
789년에는 일본 동대사에 100m 크기의 목탑이 만들어졌지만 통층 형식이고 기단도 작아 황룡사와는 비교가 안된다. 통층 탑은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고구려 평양에도 80-90m급 목탑이 여러개 있었고 고려때는 지리산 실상사의 85m의 목탑이 있었으며 백제 또는 고려초의 사찰로 추정되는 하남시 동사지에서도 기단 크기가 28미터로 약 100m급의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통층인지 각층이 있는 탑이었는지는 모른 상태다.

황룡사 탑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실 황룡사 탑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기단의 모양, 여러가지 기록, 일본과 중국에 남아있는 목탑을 보면 어느정도 복원을 할 수 있다.
고려시대 김극기의 시에 의하면

층계로 된 사다리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
일만강과 일천산이 한눈에 트이네
굽어보니 동도(경주)에 수없이 많은 집들
벌집과 개미집처럼 아득히 보이네

고려 후기 승려 혜심의 시에 의하면

한층 다보고 또 한층 보면서
걸음걸음 올라 점점 넓게 바라본다.
지면은 깍은 듯 평평한데
쇠잔한 백성의 무너진 집을 차마 볼 수 없네

라고 나와 있다.
이 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원형으로 된 층계가 있었으며 한 층 한층 구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높은 목탑은 중국의 불궁사 석가탑(1056년 건축 67.31m)으로 외관은 비록 황룡사와 많이 틀리지만 내부의 모습은 황룡사 복원에 많은 참조가 된다.
또한 황룡사는 겉에서 보기에는 9층이지만 중간 중간 암층이 있어 실제로는 17층이었던걸로 추정된다. 이것은 1996년 보탑사 목탑을 만들면서 알게 된 사실이명 불궁사 석가탑도 외관은 5층탑이지만 실제로는 9층인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황룡사는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가 지은것이다. 그렇다면 백제탑 양식을 띄우고 있을것이고 백제의 목탑을 보면 어느 정도 외관을 추측할수 있을것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을 보면 알수 있다. 미륵사지는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탑으로 목탑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일본 호류사(법륭사)의 목탑도 많은 참고가 된다. 이 목탑은 백제의 기술자가 지은것으로 1400년전 백제의 목탑 형식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참조는 경주 남산에 있는 부처바위에 새겨진 탑의 형상이다. 학자들은 이 탑이 황룡사 9층탑을 조각한거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북한 개성 불일사에서 발견된 금동소탑도 고려때까지 남아있던 황룡사탑을 그대로 본뜬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어 복원에 많은 참조가 되고 있다.
좌- 중국 불궁사 석가탑 내부    중- 일본 호류사 목탑과 금당    우- 북한 개성 불일사 금동소탑

이러한 여러가지를 참고하여 복원한 황룡사가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 모습이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황룡사의 복원?
황룡사를 복원하자는 얘기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앞에서 얘기한 박정희 대통령때부터도 그래왔지만 최근들어 여러군데서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원에는 여러 난관이 있다.
우선 현재의 황룡사터에 복원한다면 황룡사터는 영영 사라지는것인데 과연 이 복원이 제대로 된 복원인가 하는것이다.
경복궁 복원같은경우 사진등에 의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기때문에 확실하게 복원할 수 있지만 황룡사는 이것이다라는 확실한 자료가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복원도는 어디까지나 상상이므로 지금 그 자리에 복원한다면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복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최근 제시되는 의견이 다른 곳에 복원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여러가지 난관이 있다. 엄청난 복원비용과 복원 기술이다. 복원비용에만 수천억원이 든다는 얘기도 있으며(이건 과장된 수치라 생각된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기술이다.
통층 구조도 아닌 각 층이 있는 목탑을 80미터 높이로 지을수 있는 기술을 현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황룡사의 절반 크기인 보탑사 3층 목탑을 짓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 보탑사 목탑이 황룡사 이후 처음으로 사람이 올라갈수 있는 목탑을 지은것이다. 현재까지 기술이 이 정도다.
보탑사 3층 목탑. 1996년 완공됐다.

현재 부여에 짓고 있는 백제 목탑도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형식으로 지어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고 부실공사의 고증도 제대로 안되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쇠못 하나 없이 나무로만 80m의 황룡사 목탑을 복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원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어 우선 현재의 폐사지에 금당과 회랑을 복원한뒤 레이저로 황룡사 목탑을 영상으로 복원하고 그 후 2035년까지 실물을 복원한다니 그 결과가 자뭇 궁금하다.
과연 경주에 황룡사 목탑이 우뚝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신중한 복원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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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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