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2008/07/21 09:55, Filed under: 인문학 산책
| 원래는 7월 17일 제헌 60주년에 맞혀 글을 쓰려고 했다가 늦어졌다... 올해 7월 17일은 이 나라의 첫 헌법이 탄생한 지 60주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뜻깊은 날이 처음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되고 나라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사건으로 그다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서 아쉽다. 원래는 60주년에 맞혀 건국 헌법에 대해 장황하게 쓰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포기하게 됐고 그냥 몇 가지 일화나 쓰려고 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노래 하나가 '헌법 제1조'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학교 다니던 분들은 하도 많이 불러서 많이 아는 노래겠지만 요즘 세대에게 생소한 이 노래가 이번 집회 덕분에 다시 알려져서 헌법 1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은 독재 정권이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9번이나 바뀌어 누더기가 되다시피 했고 처음에 만들어진 헌법과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상징하는(그러나 명목적이었던) 헌법 1조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처음 초안 된 헌법 1조는 지금과 다른 게 있었다. 헌법 초안을 만든 유진오 박사의 헌법 제1조를 보자 초안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발한다 그렇다. 헌법 초안에 '국민'이라는 말은 없었다. '국민' 대신 '인민'이라는 말로 되어 있었다. 인민...,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지만 그렇다고 좋게 들리는 단어가 아니다.. 수십 년간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인민'이라는 말은 공산정권에서 쓰는 상당히 거부적인 단어로 다가온다. 하지만 '인민'이라는 단어는 나쁜 단어가 아니다. 사실 '국민'이라는 단어야말로 부끄럽고 과연 민주주의 상징으로써 어울리는지 생각해볼 단어다. 인민은 영어의 people을 번역한 것으로 하나의 자유인을 뜻한다. 하지만, 국민은 국가에 소속된 또는 종속된 구성원을 뜻함으로 마치 국가에 지배받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70년대까지도 링컨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of the people)! 로 번역되곤 했었는데 80년대부터 이런 번역은 사라져가서 지금은 국민의 ... 로 번역된 것밖에 찾아볼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때도 소학교가 전시체제하에 '국민학교'로 바뀐 것도 일왕에 종속된 국민이라는 뜻이었고 몇 년 전 초등학교로 바뀐 이유 또한 위에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전에는 잘 쓰지도 않던 단어 '국민'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인민'이라는 단어가, 지금 처지가 바뀌어서 서로 반대 입장이 된 이유는 이 건국 헌법 제정 당시 초안이 나중에 바뀌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계속 인민이라는 단어를 쓰던 헌법 초안은 본회의 제2 독회에서 제7조 2항에 외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용어에 대한 토론에서 문제가 되었고 이때 당시 윤치영 의원의 "북조선인민위원회 운운만 하더라도 나는 지긋지긋하게 들립니다. 나는 '인민'이라는 쓰는 데에는 절대 반대합니다."라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이로 말미암아 조봉암 의원 등이 반대했지만 결국 헌법 초안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는 빠지고 당시로써는 생소하게 들리는 '국민'이라는 단어로 바뀌었으니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자유인인 '인민'에서 국가에 종속된 '국민'으로 전략하는 순간이었고 제1조 2항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결국 명목적인 항목이 되어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수십 년 동안 독재정권의 휴지 쪼가리로 바뀌는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뢰벤쉬타인이 말하는 명목적 헌법 또는 장식적 헌법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첫 헌법의 탄생이 이러한 비극으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인민보다 국민이 생소했다는 것은 48년 7월 17월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헌법 서명 공포식에서 행한 이승만 당시 국회의장의 공포사에서도 볼 수 있다. "삼천만 국민을 대표한 대한민국 국회에서 ... 이 헌법이 우리 국민의 완전한 국법임을 세계에 선포합니다. .... 이날 이때에 우리가 여기서 행하는 일이 영원한 기념일이 될 것을 증명하여 모든 인민이 각각 마음으로 ..." 이승만은 공포사를 낭독하면서도 국민이라는 말을 쭉 쓰다가 인민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말하기도 했다. ![]() 1948년 7월 17일 이승만 당시 국회의장이 건국 헌법에 서명하고 있다. 후에 헌법 초안자 유진오는 그의 회고록에서 "'국민' 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뜻으로 국가우월주의 냄새가 풍기는 반면, '인민'은 '국가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를 의미한다."면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겼다." 라고 한탄했다.. 그리하야 레드콤플렉스에 갇힌 '인민'이라는 단어는 반공드라마에서 빨갱이들이나 쓰는 단어로 전략했고 작년 남북정상회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는 말을 쓴게 문제가 될 정도가 됐다. (인민은 위대하다.. 인민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나면 이 말 참 가슴 벅차오르는 말이 아닌가?) 이렇게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단어는 인민뿐이 아니다. '동무'라는 말도 북한이 쓴다고 하여 부지불식간에 전혀 쓰지도 않던 '친구'라는 단어로 대체되었고 '노동자'는 '근로자'로 대체되었다. 이 땅의 비극적 역사의 한 단면이다. 덧)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도 사실 영어에 영향을 받은 일본어 투 말이다. '국민에게서 나온다'가 맞는 말이다. 수십 년 동안 헌법이 9번이나 바뀌었으면서 제일 유명하고 제일 중요한 1조의 일본어 투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 아마도 문제조차 된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제일 중요한 헌법 제1조가 위정자들에게는 오히려 귀찮은 문장이므로 신경을 안써서 그런것이 아닐까? 나도 이 글을 쓰면서 발견했다. 처음에 무의식적으로 제목을 인민에게서 나온다로 했다가 어쩔수 없이 헌법에 나온 엉터리 말투 때문에 제목을 헌법에 나온 일본식 말투로 고쳐야 했다.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제대로 된 말투로 글 쓴 거 보면 나도 국어 교육은 제대로 했군... 흠흠..ㅡ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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