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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1 지리산 종주기 - 1
13년만이었다. 군대 시절 휴가 나와서 피아골-노고단-천왕봉-대원사 코스의 지리산 종주후 언젠가 다시 종주해야지 생각하며 지낸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다.
그동안 지리산에 안온것은 아니다. 노고단, 왕시루봉, 불일폭포, 쌍계사, 화개등 지리산 주위에 자주 왔었지만 종주만큼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가? 그만큼 지리산은 나에게는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경외의 산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다가 드디어 다시 한번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게 되었다. 하지마 이번은 처음 종주와 달리 성삼재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지리산 종주는 산 밑에서 등정을 시작해야 진짜라고 생각했다. 등산이란게 산밑에서 시작해야지 산정상부근에서 시작하는게 그게 무슨 등산이고 종주냐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귀찮아졌다..ㅡㅡ;;
그래서 남들처럼 성삼재에서 시작하자는 생각을 갖게 됐으니.. 종주가 끝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종주 후기를 쓰는것도 귀찮아서였다...역시 나이 먹는것은 귀차니즘과의 싸움이 아닐련지..

2009년 9월 14일. 같이 가기로 한 형과 서울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잠을 한숨도 안잤지만 별로 졸렵지는 않았다. 기차가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20분경.
역에 내리자마 택시들의 호객행위가 시작된다. 버스 첫차가 6시니 성삼재에 식당이 있으니 거기서 밥먹고 가라느니.. 하면서 1인당 만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죄다 거짓말이다. 성삼재에는 식당도 없고 버스 첫차는 4시에 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서 구례 버스터미널까지만 갈것을 요구했고 기사는 못마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참고로 3시 23분에 도착하는 기차가 있는데 도착하면 바로 성삼재 가는 버스가 구례구역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걸 타고 구례터미널에서 내려 좀 기다렸다가 다시 타고 올라가면 된다.
굳이 역앞에서 택시 탈 필요는 없다. 아니면 나처럼 더 일찍 도착해서 구례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밥 먹고 4시 버스 타고 올라가도 된다. 단 혼자라면 그냥 성삼재까지 택시 타고 가는게 나을수도 있다.

반야봉을 배경으로 아침노을이 물들고 있다.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보지 못했다.


4시에 탄 버스는 어두운 성삼재 도로를 구불 구불 올라간다. 성삼재가 얼마나 높은지 20여분을 달려야 도착한다. 13년전 이 높이를 도로도 아닌 등산로로 그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올라왔었다니.. 지금은 감히 도전할 생각이 안난다.
버스에서 내리니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날씨가 흐려서 기대했던 하늘의 별들은 안보인다. 빛하나 없는 성삼재에서 노고단 올라가는길.
성삼재 길은 원래 무장공비 침투에 대비하여 벽소령길과 함께 만든 도로인데 1985년 외국에서 돈을 빌려 확포장해서 오늘에 이른다. 이 도로를 볼때마다 지리산 한구석에 생채기를 낸것같아 가슴이 아프다. 이 도로로 인해 이렇게 쉽게 노고단 꼭대기에 오를수 있으니 지리산 종주는 화엄사 밑에서 시작되는것이 아니라 노고단에서 시작되고 있고, 하이힐 신고 양산 쓴 사람들도 마구 산을 밟아되어 생태계가 파괴되어 이제 노고단 정상부는 부분 개방만 되고 있다. 그동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이 도로를 폐쇄하겠다고 여러번 공언했지만 이제는 그런 소리조차 안나오는데 수많은 관광객을 차량으로 실어나르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케이블카까지 설치하려니.. 인간의 이기심은 정말 무섭다.
현재 노고단과 제석봉등 지리산에는 3-4군데에 케이블카를 만들려고 추진하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것이다.
노고단 산장에서 물을 마시고 성삼재 출발 1시간여만에 노고단에 도착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온 관계로 노고단 정상은 출입이 금지되어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다. 아마도 오전 9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것 같다. 날씨가 흐려서 일출도 제대로 안보이고 지리10경인 노고단 운해도 못보고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노고단의 모습. 오른쪽 건물은 KBS 방송 중계탑이다.


일출을 못본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시 길을 떠났다.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거기다가 DSLR까지 메고 있으니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그래도 길은 편하다. 신라때 화랑이 쏜 화살보다 말이 더 빨리 달린다는 과장된 전설이 전해올 정도로 임걸령까지의 길은 평탄했다.  돼지령에서는 왕시루봉까지의 능선이 장쾌하게 보인다. 돼지령을 지나 임진왜란 당시 이 곳에서 활약하던 도적 두목 임걸년의 이름을 딴 임걸령 샘에 도착했다. 지리산 주변 곳곳에 임걸년의 전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엄청난 도적이었나보다. 전설에는 임꺽정같은 의적이었다고 하나 난중잡록에 기록을 보면 중들과 백성에게 많은 피해를 입음이 수를 헤아릴수 없었다니 어느것이 진실일까?

돼지령에서 본 왕시루봉 능선. 가운데 솟은 산이 왕시루봉이다.


임걸령샘.


임걸령을 지나면서 비탈길을 만나게 되는데 아직은 힘이 안든다. 등산로 좌우로는 산오이풀, 산구절초, 투구꽃등의 야생화가 피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수십분을 걸어 노루목에 도착했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왼쪽으로 반야봉 갈림길을 가르치는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고민을 하게 된다. 주능선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는 반야봉을 들렀다 갈것인가? 배낭을 내려놓고 들렸다와보고도 싶은데 왕복 2시간 가까이 걸리지 않는가? 그렇지만 지난번 종주때도 안 들렸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들르는것도 좋지는 않을까?
하지만 결국은 귀차니즘이 승리한다.. 우리는 반야봉을 놔두고 그냥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도봉은 경남, 전남, 전북 3개도의 경계를 이루기 때문에 붙어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낫의 날같이 생겼다고 해서 '날라리봉'으로 불리어졌고 지도에도 그렇게 써 있었지만 요즘은 날라리봉이라는 이름을 보기 힘들어졌다.

노루목. 왼쪽 길로 1km를 가면 반야봉이다.

삼도봉 정상에 98년에 세워진 기념물이 있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목통골. 오른쪽이 불무장등 능선이다. 여성분이 서있는 바위밑은 천길 낭떠러지로 밑에서 강풍이 올라와 서 있기도 겁나는 곳이다.


삼도봉을 지나자 500여개의 나무 계단으로 이루어진 내리막길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나무계단이 없어서 위험했는데 요즘은 많이 편해졌다. 하지만 나의 고행은 여기서 발생했으니.. 평소 아프던 왼쪽 무릎이 층간높이가 높은 나무 계단을 내려가자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른쪽 무릎에 힘을 주며 내려오다보니 오른쪽 무릎도 통증이 오고 이때부터 서울 올라올때까지 극심한 무릎 통증은 계속 따라오기 시작했다. 내 몸을 지탱하는 스틱이 없었으면 종주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두 다리에 신경쓰다보니 체력도 극심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빠른 속도로 오던 등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느려졌다고 많이 느려진것은 아니고 지도에 표기된 산행 시간보다 약간 빠른 정도였으니 종주에는 무리가 가지 않는 속도였다.
끝없는 계단을 내려서니 화개재에 도착했다. 화개재에 내려서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의 고행을 예상하느는듯한 신호였으리라..
화개재 북쪽으로는 뱀사골인데 얼마전까지 뱀사골 산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됐다. 화개재는 종주코스중 가장 높이가 낮은 지역으로 화개장터와 뱀사골에서 올라온 특산물을 거래하던 일종의 산위 장터였다. 여기서 거래된 소금을 싣고 가던 소금장수가 뱀사골에서 물에 빠졌기에 간장소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 산장에 도착,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예전에 벽소령 산장이 만들어지기전, 성삼재가 개통되기전 화엄사에서부터 올라온 종주객들이 대부분 여기서 첫날밤을 지샜던 곳이다. 나 또한 13년전 여기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다. 하지만 지금은 텐트도 금지되고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하루를 묵기에는 너무 가깝고 여기서 하루 묵고 장터목까지 가기에는 먼 애매한 위치가 되었다.
라면을 먹고 1시가 되자 다시 길을 떠났다.
삼각고지가 나타났다. 이곳 남쪽으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빗점골이 있는데 예전에 왔을때는 그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는데 어느새 없어졌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연하천 산장.


삼각고지에서 바라본 지리산 남부. 멀리 높이 솟은 봉우리가 백운산인듯하다. 앞을 가로지르는 능선은 토끼봉능선이다.


삼각고지를 지나자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오르막은 오히려 쉽지만 내리막은 무릎 통증때문에 힘들다. 날씨가 쌀쌀했음에도 무릎때문에 온몸에 땀이 흐른다. 얼마 정도 가자 거대한 바위가 드러난다. 형제봉이다. 지도만 보고 형제봉만 넘으면 벽소령까지 내리막인줄 알았는데 형제봉을 내려오니 또 다른 이름없는 봉우리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식의 배신때리기는 지리산 종주 코스 내내 계속된다. 지도상에 몇개의 봉우리만 보이지만 실제로 넘는 봉우리는 20여개는 되는듯 하다.

형제바위 너무 커서 사진 두장을 합친것이다. 사진에 안나오지만 왼쪽에 동생바위도 있다.


왼쪽 움푹 패인곳에 벽소령 산장이 보인다. 이 사진을 찍고 5분후 비구름이 몰려와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무릎 통증으로 힘들게 산행을 해서 몸은 지칠대로 지친상태에서 지도에도 없는 봉우리들이 나타나면 기운이 빠진다. 더구나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봉우리를 남겨두고 오늘 묵을 벽소령 산장이 보인다. 하지만 왜 이리 멀어 보이는지...
벽소령을 향하는데 마지막 이정표가 700m 남았다고 알려주는데 700m가 왜 이리 긴지.. 땀과 빗방울이 얼굴을 흘러내리고 기온차로 인해 고글에 김이 서려 앞도 잘 안보인다. 몸은 스틱에 의존해서 내 정신에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고 마지막 남은 길은 까탈스런 돌밭길로 힘들기만 해서 마지막 700m가 수km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갑자기 숲속 돌밭길이 끝나면서 넓은 공터와 안개에 싸여 있는 벽소령 산장이 나타난다. 아 이제 쉴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우리는 너무 일찍 도착한것이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3시 35분. 산장이 문 여는 시간은 오후 6시...
비오고 날씨는 쌀쌀하고 몸은 무거운데다가 날을 새고 와서 급속한 피곤이 몰려온다.
옷을 껴입어도 흐린 날씨로 인해 상당히 춥다. 옷도 다 젖었지만 습도가 높아서 등산복임에도 잘 안마르고.. 그야말로 최악이다. 거기다 무릎도 아프고 다리에 알이 배겨서 걷기도 힘들다.
샘터는 산장에서 200미터나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무릎이 아프니 샘터 갔다오기도 힘들다. 물도 잘 나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자기로 했다. 저녁 먹기도 힘들다. 이런 산행에서는 그냥 간편한 전투식량같은 음식이 편하다.
사실 오늘 산행은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같이 온 형도 지난번 종주랑 느낌이 너무 다르다면서 내일 해가 뜨고 하산하자는 의견을 내 놓는다.
우리는 내일 날씨를 보고 내일 일정을 정하기로 했다. 일찍 자기로 했지만 산행중 만난 사람과 술을 먹는 바람에 늦게 자게 됐다.
하지만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2시간도 못자고 깼다. 밖을 나오니 구름 사이로 약간씩 별이 보였다.
예전 지리산 종주중에 본 여름 은하수는 감동이었다. 나는 이번 산행에서도 그런 밤하늘을 기대했지만 날씨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었다.
벽소령은 지리10경 중 하나인 벽소명월이 유명한곳이지만 흐린 날씨로 인해 달도 별도 볼수 없었다. 하지만 새벽 밤하늘은 내일의 날씨가 맑을것이라는것을 예고 하고 있었다.
13년전 종주시에는 공사중이어서 그냥 지나쳤던 벽소령 산장. 나는 그렇게 지리산의 첫날밤을 다른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날밤으로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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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빛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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