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1 13:30
9월 15일 두번째 날이 밝았다.
어제의 그 날씨는 어디로 갔는지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개었다. 무릎의 통증은 어제보다 더해졌다. 200미터 떨어진 샘터에서 물을 떠오기도 힘들정도다.
그럼에도 종주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면 너무나 아쉬웠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어제는 한낮에도 그렇게 춥더니 오늘은 해가 비추자 아침부터 덥게 느껴졌다. 문득 예전의 지리산 종주때가 생각난다.
한여름이라는것만 믿고 반팔만 입고 왔다가 밤에 추위에 떨며 고생했던.. 어찌나 추운지 텐트안에서 잠을 제대로 못자서 아침에 해가 떠서 기온이 올라간뒤에 본격적으로 잠들어 남들보다 늦게 출발하고는 했다. 이번에는 그 때 경험으로 여러벌의 옷을 준비했지만 그래도 산에서의 기상변화는 적응하기가 참 힘들다.
벽소령 산장에서 출발한 뒤로는 한참 길이 편하다. 이 길은 원래 성삼재 도로와 같이 만약에 대비해 공비소탕을 위해 만든 길이었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를 하면 자주 볼수 있는 헬기장에서 알수 있듯이 헬기를 이용하게 되어 이 도로는 무용지물이 되어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길도 성삼재 도로처럼 포장할려고 예산까지 편성됐고 산 아래에서는 일부구간이 포장되었지만 그 후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서 무산됐다. 이것이 6월 항쟁으로 이룬 민주화가 빚어낸 또 다른 성과가 아닐런지.
성삼재 도로는 독재정권시절에 만들어져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지만 벽소령 도로는 훨씬 늦게 6월 항쟁후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뤄진 뒤 추진되서 다행스럽게 무산된것이다. 몇년만 일찍 추진됐어도 우리는 지리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흉물스런 포장도로와 산꼭대기까지 구름처럼 몰려와서 이곳 저곳을 짓밟는 관광객을 보았을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몇년전까지 지프형 택시들이 올라오던 길은 이제는 사실상 도로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서 편한 등산로로 변했다.
벽소령 도로를 벗어난 등산로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속길이 반긴다. 숲속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좀만 가다보니 공터가 나타난다. 벌써 선비샘이다.
선비샘은 이곳 아래 상덕평 마을에 가난하고 천대받던 노인이 죽어서라도 사람 대접 한번 받아보고 싶어 아들이 이 샘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인 물을 떠먹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무릎 꿇어야 함으로 노인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된것이다. 하지만 몇년전에 샘에 파이프로 연결되서 굳이 무릎을 안꿇게 되었고 무덤도 사라졌다.
요즘은 샘에 이 전설에 대해 안내판까지 설치가 되었다.
선비샘을 지나 오른 봉우리는 망바위다. 이름 그대로 지리산 동부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목표 천왕봉도 드디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망바위를 지나 이제 세석으로 향한다. 지리산 종주중 가장 힘들다고 하고 나 또한 그렇게 기억했던 곳이라 긴장이 되었다. 망바위 다음 봉우리인 칠선봉은 여러가지 기암괴석이 봉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여기를 지나 영신봉으로 향하는 길은 높은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한다. 주위 기암들의 여러가지 모습이 재밌다.
영신봉에 올라서면 대성골이 훤히 보인다. 대성골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중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곳으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사람 인골이 발견되곤 했다고 한다.
영신봉을 넘어서면 바로 세석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등반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넓은 산위의 고원, 세석고원이 나타났다!
세석고원은 남한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고원이다. 1472년과 1489년 여기를 다녀간 김종직, 김일손의 기록에 의하면 숲이 울창했다고 하는데 200년전쯤에 일어난 산불로 인해 현재와 같이 변한걸로 추정된다. 그 뒤로 지리산 철쭉제와 군사시설, 야영객의 텐트 가설로 황폐화 됐다가 최근에 복원중이다. 지리산을 오른 옛사람들이 여기를 지리산의 이상향인 '청학동'이 아닌가 적고 있기도 하다.
세석산장 밑에 샘터가 있는데 물이 말라서 한참을 내려가야 다른 샘터에서 물을 받을수 있었다. 가뭄때문인지 숲이 파괴되서인지..
세석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늘의 목적지인 장터목을 향해 출발했다. 한낮이 되자 햇볕이 더욱 더 뜨거워졌다. 추웠던 어제 날씨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촛대봉을 오르는 길은 나무그늘이 거의 없어 따가운 햇살이 등에 바로 닿아서 무척이나 덥고 힘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힘들게 올라서자 천왕봉과 남부능선이 시원스럽게 보였다. 저 멀리 진주시가지가 구름사이 햇볕을 받으며 아스라히 보인다. 천왕봉이 가까와졌다니 반갑기만 하다. 촛대봉 정상은 바위들로 이루어져서 마치 달 표면 같았다.
촛대봉에서 보면 천왕봉에 코앞에 있는듯이 보이지만 막상 등반하면 또 넘어야할 봉우리들이 왜 이리 많은지. 더구나 여기부터는 바위들이 많아 길이 힘들다. 중간 중간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길도 보인다. 그런데 벽소령을 떠나면서 이상하게 은행 열매의 특이한 구린내가 계속 난다. 이 냄새의 정체는 무었일까? 은행나무라고는 전혀 볼수 없는 곳에서 계속 나는 구린내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궁금했지만 끝내 풀수 없었다.
삼신봉을 지나 이름없는 1807미터 봉우리에서 돌아보니 저 멀리 아득히 우리가 출발한 노고단이 보인다. 저 먼 거리를 우리가 왔다니.
코 앞에는 오늘 목적지이 장터목 산장 가기전 마지막 봉우리인 연하봉이 보인다. 다 왔다는 생각에 힘을 내면서 걸어가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했다. 어제 너무 일찍 도착해 고생한 생각에 5시 30분쯤 도착했다. 장터목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 그대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마도 지리산에서 가장 붐비는 산장일것이다. 예전에는 장터목 주위로 텐트가 층층히 빼곡히 들어섰는데 지금은 야영이 금지되고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장터목 산장 밑에 있는 샘은 예나 지금이나 물이 조금씩 나온다. 제석봉 숲을 인간들이 불태워 황폐하게 만든 결과다.
예전에 장터목에서 본 뜻하지 않은 일몰이 아름다웠는데 오늘 날씨도 좋아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조화인지? 일몰 시간 바로 직전에 그렇게 맑던 하늘에 갑자기 안개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도 운이 없다니.. 결국 일몰은 커녕 오늘밤도 별 보기도 글렀다는 생각과 내일 일출이나 제대로 볼수 있을런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의 그 날씨는 어디로 갔는지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개었다. 무릎의 통증은 어제보다 더해졌다. 200미터 떨어진 샘터에서 물을 떠오기도 힘들정도다.
그럼에도 종주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면 너무나 아쉬웠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어제는 한낮에도 그렇게 춥더니 오늘은 해가 비추자 아침부터 덥게 느껴졌다. 문득 예전의 지리산 종주때가 생각난다.
한여름이라는것만 믿고 반팔만 입고 왔다가 밤에 추위에 떨며 고생했던.. 어찌나 추운지 텐트안에서 잠을 제대로 못자서 아침에 해가 떠서 기온이 올라간뒤에 본격적으로 잠들어 남들보다 늦게 출발하고는 했다. 이번에는 그 때 경험으로 여러벌의 옷을 준비했지만 그래도 산에서의 기상변화는 적응하기가 참 힘들다.
벽소령 산장에서 출발한 뒤로는 한참 길이 편하다. 이 길은 원래 성삼재 도로와 같이 만약에 대비해 공비소탕을 위해 만든 길이었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를 하면 자주 볼수 있는 헬기장에서 알수 있듯이 헬기를 이용하게 되어 이 도로는 무용지물이 되어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길도 성삼재 도로처럼 포장할려고 예산까지 편성됐고 산 아래에서는 일부구간이 포장되었지만 그 후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서 무산됐다. 이것이 6월 항쟁으로 이룬 민주화가 빚어낸 또 다른 성과가 아닐런지.
성삼재 도로는 독재정권시절에 만들어져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지만 벽소령 도로는 훨씬 늦게 6월 항쟁후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뤄진 뒤 추진되서 다행스럽게 무산된것이다. 몇년만 일찍 추진됐어도 우리는 지리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흉물스런 포장도로와 산꼭대기까지 구름처럼 몰려와서 이곳 저곳을 짓밟는 관광객을 보았을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몇년전까지 지프형 택시들이 올라오던 길은 이제는 사실상 도로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서 편한 등산로로 변했다.
벽소령 도로를 벗어난 등산로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속길이 반긴다. 숲속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좀만 가다보니 공터가 나타난다. 벌써 선비샘이다.
선비샘은 이곳 아래 상덕평 마을에 가난하고 천대받던 노인이 죽어서라도 사람 대접 한번 받아보고 싶어 아들이 이 샘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인 물을 떠먹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무릎 꿇어야 함으로 노인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된것이다. 하지만 몇년전에 샘에 파이프로 연결되서 굳이 무릎을 안꿇게 되었고 무덤도 사라졌다.
요즘은 샘에 이 전설에 대해 안내판까지 설치가 되었다.
선비샘을 지나 오른 봉우리는 망바위다. 이름 그대로 지리산 동부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목표 천왕봉도 드디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망바위를 지나 이제 세석으로 향한다. 지리산 종주중 가장 힘들다고 하고 나 또한 그렇게 기억했던 곳이라 긴장이 되었다. 망바위 다음 봉우리인 칠선봉은 여러가지 기암괴석이 봉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여기를 지나 영신봉으로 향하는 길은 높은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한다. 주위 기암들의 여러가지 모습이 재밌다.
영신봉에 올라서면 대성골이 훤히 보인다. 대성골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중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곳으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사람 인골이 발견되곤 했다고 한다.
영신봉을 넘어서면 바로 세석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등반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넓은 산위의 고원, 세석고원이 나타났다!
세석고원은 남한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고원이다. 1472년과 1489년 여기를 다녀간 김종직, 김일손의 기록에 의하면 숲이 울창했다고 하는데 200년전쯤에 일어난 산불로 인해 현재와 같이 변한걸로 추정된다. 그 뒤로 지리산 철쭉제와 군사시설, 야영객의 텐트 가설로 황폐화 됐다가 최근에 복원중이다. 지리산을 오른 옛사람들이 여기를 지리산의 이상향인 '청학동'이 아닌가 적고 있기도 하다.
세석산장 밑에 샘터가 있는데 물이 말라서 한참을 내려가야 다른 샘터에서 물을 받을수 있었다. 가뭄때문인지 숲이 파괴되서인지..
세석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늘의 목적지인 장터목을 향해 출발했다. 한낮이 되자 햇볕이 더욱 더 뜨거워졌다. 추웠던 어제 날씨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촛대봉을 오르는 길은 나무그늘이 거의 없어 따가운 햇살이 등에 바로 닿아서 무척이나 덥고 힘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힘들게 올라서자 천왕봉과 남부능선이 시원스럽게 보였다. 저 멀리 진주시가지가 구름사이 햇볕을 받으며 아스라히 보인다. 천왕봉이 가까와졌다니 반갑기만 하다. 촛대봉 정상은 바위들로 이루어져서 마치 달 표면 같았다.
촛대봉에서 보면 천왕봉에 코앞에 있는듯이 보이지만 막상 등반하면 또 넘어야할 봉우리들이 왜 이리 많은지. 더구나 여기부터는 바위들이 많아 길이 힘들다. 중간 중간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길도 보인다. 그런데 벽소령을 떠나면서 이상하게 은행 열매의 특이한 구린내가 계속 난다. 이 냄새의 정체는 무었일까? 은행나무라고는 전혀 볼수 없는 곳에서 계속 나는 구린내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궁금했지만 끝내 풀수 없었다.
삼신봉을 지나 이름없는 1807미터 봉우리에서 돌아보니 저 멀리 아득히 우리가 출발한 노고단이 보인다. 저 먼 거리를 우리가 왔다니.
코 앞에는 오늘 목적지이 장터목 산장 가기전 마지막 봉우리인 연하봉이 보인다. 다 왔다는 생각에 힘을 내면서 걸어가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했다. 어제 너무 일찍 도착해 고생한 생각에 5시 30분쯤 도착했다. 장터목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 그대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마도 지리산에서 가장 붐비는 산장일것이다. 예전에는 장터목 주위로 텐트가 층층히 빼곡히 들어섰는데 지금은 야영이 금지되고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장터목 산장 밑에 있는 샘은 예나 지금이나 물이 조금씩 나온다. 제석봉 숲을 인간들이 불태워 황폐하게 만든 결과다.
예전에 장터목에서 본 뜻하지 않은 일몰이 아름다웠는데 오늘 날씨도 좋아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조화인지? 일몰 시간 바로 직전에 그렇게 맑던 하늘에 갑자기 안개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도 운이 없다니.. 결국 일몰은 커녕 오늘밤도 별 보기도 글렀다는 생각과 내일 일출이나 제대로 볼수 있을런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사진을 클릭하세요. 삼신봉과 연하봉 중간인 1807미터 봉우리에서 본 지나온 경로. 멀리 제일 높은 봉우리가 반야봉, 그 왼쪽 삼각형 봉우리가 출발지인 노고단이다. 저기서 여기까지 산봉우리를 넘어 온것이다. 왼쪽 봉우리가 촛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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