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2006/05/05 11:57, Filed under: 인문학 산책
| 세조때 홍일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상당히 기인으로 세조와 농담따먹기까지 할 정도였다. 근데 이 분이 엄청난 대식가였다.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이 분에 대한 재밌는 글이 있어서 소개한다. "홍일동이 일찍이 진관사(眞寬寺)에서 놀 적에, 떡 한 그릇, 국수 세 주발, 밥 세 바릿대, 두부 국 아홉 주발을 먹었는데,산 밑에 이르니 대접하는 이가 있어, 또 찐 닭 두 마리, 생선국 세 주발, 생선회 한 쟁반, 술 마흔 잔을 먹으니, 보는이들이 대단하게 여겼다. 세조(世祖)가 듣고 홍일동을 불러 묻기를, “참으로 이와 같이 먹었느냐.” 하니, 홍일동이 그렇다고사과하자, 상감은 장사(壯士)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평상시 출입할 적에는 다만 미숫가루와 전술[醇酒]을 먹을 뿐이요, 밥을 먹지않았다. 뒤에 홍주(洪州)에 가서 폭음(暴飮)을 하고 곧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가 배가 터져 죽은 것이라 의심하였다. 뜻이있어도 시행치 못하였고 벼슬이 그 능력에 차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다." -逸童嘗遊眞寬寺。食餠一器麪三椀飯三藩腐麪九椀。及到山下。有餉之者。食蒸鷄二隻魚羹三椀魚膾一盤酒四十餘觚。觀者壯之。明日世祖聞之。召逸童問曰。信如是能喫乎。逸童拜謝。上曰壯士也。然常時出入。但食餌屑醇酒而已。不喫飯。後到洪州劇飮。尋卒。人疑其爛腹也。有志不施。位不滿能。惜哉。 대단한 식욕이 아닌가? 은항아리에 든 술도 혼자서 한번에 다마셨다고 한다. 얼마나 대식가였으면 폭음으로 죽은것도 사람들이믿지않고 배가 터져 죽은것이라 생각했을까? 참고로 당시 밥 그릇은 지금 밥 그릇의 3배 크기로 요즘 세 끼치를 한끼에 먹었다. 세조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중국에 가서 실컷 유람하라고 선위사(명나라 사신 영접하는 관직)라는 벼슬을 줘서 유람시켰으나, 결국 중국 홍주에서 폭음으로 그의 생(세조 10년)을 마쳤으니 안타까워했을 세조의 모습이 느껴진다. -후세의 시인은 이 사람의 무덤 풀뿌리마다 술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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