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은 선운사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움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송창식
노래에 나오듯이 선운사는 동백꽃이 유명하다. 미당 서정주도 그의 시에서 선운사에 동백꽃을 노래했으니.. (송창식의 노래를 간혹 서정주의 시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몇년전부터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 초가을에 피어나는 꽃무릇이 알려지더니 요즘은 동백꽃보다 꽃무릇이 더 유명한것 같다. 그 핏빛 붉은색으로 피어나는 꽃무릇을 볼 겸 선운사를 찾았다.
아무래도 선운사를 알리는 유명한 시는 서정주의 시일것이다. 선운사 입구쪽에 서정주의 시비가 있다고 했는데 들어갈때 못찾고 나올때나 찾았다. 길이 두개가 있는데 꽃무릇을 볼려면 다른 길로 가다보니 시비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작정하고 찾지 않는한 시비가 그렇게 눈에 띄는것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동운암으로 오르는 숲길에 있었으나 지금은 입구로 가는 큰길 옆으로 옮겨졌고 대리석 받침대까지 생겨 예전의 수수한 모습은 찾아볼길 없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선운사 동구(洞口) - 서정주
1974년 세워진 비석은 미당 서정주의 글씨를 새긴것 같은데 알아보기 좀 힘들었다. 비에 쓸 글씨가 이 정도면 서정주 시인도 악필이었던듯 하다. 이 비석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워진 시비이다. 서정주 시인의 부끄러운 삶처럼 시비도 부끄러운 역사인듯하다.
육자배기를 들러주던 막걸리집 여인은 선운사 입구에서 술도 팔고 창도 하던 여자로, 말년에는 그 스산한 신세를 아편에 의지하다가 아랫 동네 감나무 밑에서 주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서정주 시인은 분명히'여자가 사나와서 6.25 당시 빨치산에 의해 찔러죽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전자의 이야기가 더 사실로서 알려져 있다. 전자의 이야기는 분명히 80년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문학기행'에 김훈이 쓴 글에 실린 내용때문인데 어느게 사실일까? 곽재구 시인은 이화성이라는 찻집 주인이 자기가 그 육자배기 여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주장이 있고 특히 서정주 시인의 얘기보다 마을 주민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것은 그 이야기가 더 낭만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막걸리 집 여인의 뒷얘기는 서정주 시인의 죽음으로 영원한 미스터리가 된 듯하다..
선운산을 넘어가면 미당 생가와 미당 시문학관이 있으나 시간상, 교통상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에 고창을 가게 되면 들러보아야 겠다. 어찌됐든 미당의 천재적인 시적 감성은 인정해줘야 하니까..
선운사는 그 유명세에 비해 건물도 몇 채 없고 작다. 미안한 말이지만 선운사는 절 자체보다 주변에 볼거리와 동백꽃, 꽃무릇, 가을 단풍 등이 더 매력적인듯 하다. 하지만 아담한 사찰이 주는 느낌은 조용하고 고느적한것이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선운사 대웅전앞에는 배롱나무에 백일홍이 붉게 피어 있고 그 유명한 동백나무숲이 선운사 뒤에서 선운사를 받쳐주고 있다.
선운사 동백꽃은 4월 중순부터 5월초에 오면 볼 수 있다.
대웅전 앞 만세루는 건축후 남은 목재로 만든듯 여러 조각으로 기둥을 만든게 이채로운데 어는 늙은 일본 건축가가 이 모습에 감탄해 여러번 절을 했다고 서정주 시인은 쓰고 있다. 선운사의 창건 신화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밝혔듯이 그다지 믿을만한 얘기가 아니라 생락한다.
선운사 앞 도솔천은 낙옆속 탄닌 성분으로 갈색으로 흐르는데 보기와 달리 맑아서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불교적 이름의 도솔천은 특히 가을에 옆으로 핀 꽃무릇 군락과 터널을 이루는 단풍이 물에 비친 모습이 장관이라서 요즘은 봄의 동백꽃보다 더 인기 있는듯 하다.
선운사에서 9월 하순에 장관으로 피는 꽃무릇은 석산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 들어온 꽃으로 절주변에 그늘진곳에 많이 자란다. 상사화로 잘못 아는 경우도 있는데 상사화는 다른 꽃이다. 예전부터 선운사 주변에 있었는데 최근 디카 인구가 늘어나면서 최근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치 붉은 양탄자를 깐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는데 올해는 늦더위에 가뭄까지 겹쳐 예년보다 훨씬 못미치게 핀게 아쉽다. 잎이 없는 이유는 꽃이 떨어지고 나서야 잎이 나오기 때문이다.
선운사 입구에 보면 숲속에 아늑한게 자리잡은 부도밭이 있다. 한가운데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 비문이 있다. 까만 남포 오석으로 만들었는데 그 앞에 붉은색 안내판이 너무 틔었다. 고즈넉한 부도밭 한가운데 저런 눈에 틔는 안내판은 누구의 어처구니 없는 센스인지? 뒤에 핀 붉은 꽃무릇은 어울리는데 왜 붉은 안내판은 자꾸 거슬릴까?
도솔천을 따라 올라가면 도솔암이라는 암자에 도착한다. 경사도 거의 없고 숲이 아늑하게 자리잡은 길에다가 양 옆으로 꽃무릇이 계속 따라주니 오르는 길이 즐겁다. 안타까운 것은 지독한 가뭄으로 냇물도 마르고 약수물도 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서 비가 와야 하는데..
도솔암 옆 거대한 절벽으로는 수십미터의 석가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이 석가여래상 명치 부분에는 네모난 서랍이 있는데 동학농민전쟁 당시 이 서랍안에 '석불비결'이 있어 이 비결이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한다는 전설이 퍼졌다. 그래서 당시에 이 비결을 꺼내봤다고 하는데 그 비결은 다름아닌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라는 것이었다. 전설이 그러하듯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 옆에는 진흥굴이라는 굴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와 불법 정진에 들어간 굴이라 한다. 진흥왕 창건설화를 이끌어내려는 지어낸 전설일 뿐이다. 그 옆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낸 장사송이 커다랗게 들어서 있다.
선운사에는 천연기념물이 3개나 있다. 유명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숱한 화재로 국보 하나 없지만 천연기념물이 3개나 있다는 것은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경우다.
동백호텔. 예전에는 2층의 아담한 동백여관이었다. 선운사 주변은 고천 특산품인 풍천장어와 복분자주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몇년전 지인덕에 풍천장어와 복분자를 원없이 먹어 곯아떨어진 추억이 생각난다.
하지만 봄과 가을, 붉은 꽃이 처연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속 깊이 적시는 울림을, 슬픔이 메아리치는 선운사는 언제든지 다시 가보고 싶은 추억으로 남으리라.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때 처럼
잊는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꾳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 최영미
더 많은 꽃무릇 사진은 저의 다른 블로그인 http://photonury.com/10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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