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나 방송들을 보면 본국검법(本國劍)이 신라의 검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검법이라고 한다. 어느곳도 본국검법이 신라의 검법이라는 것에 의문을 표한것을 못보았다.
본국검법이 신라때 검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20년전으로 당시에는 별로 인기 없던 검도를 학교에서 무조건 배워야 했는데 당시 검도 선생이 본국검법을 가르쳐주면서 신라의 검법이라고 한것이다.
(검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것은 나한일, 김정호가 창안한 해동검도가 TV를 통해 알려진 80년대 후반부터다. 당시 무풍지대라는 인기드라마에 나한일씨가 등장했고 이것이 상당한 선전효과를 거두었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검도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당시부터 의문시 되던것이 어떻게 신라의 검법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을까 하는것이었다. 삼국시대 역사서는 물론이요 제대로 된 문헌조차 남아있는것이 없는데 어떻게 검술을 적은 기록이 남아 있을까?

본국검법이 나온 문헌은 단 하나! 무예도보통지(武志)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14년(1790년) 백탑파로 알려진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가 지은 책으로 특히 그림으로 무예를 나타난게 특징적이다. 이 책에 본국검법이 그림과 함께 나온다.
그럼 이 책에 실린 본국검에 대한 설명을 보자.

'여지승람에 이르기를 황창랑은 신라인이다. 전하는 말에는 7살에 백제에 들어가서 시중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담을 이룬 것 같았다. 백제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불러서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창랑이 이 기회를 타서 왕을 찔렀다. 이로 인하여 백제국인들이 그(황창랑)을 죽이니 라인(羅人=신라인)들이 슬퍼하여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한다.라고 (여지승람에서 전)한다.
(중략)신라는 왜국과 이웃하여 그 검무가 분명히 전했을텐데 밝혀낼 수가 없다. 이제 황창랑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今因黃倡郞爲本國劍之緣起). (하략)'
역시 컴으로 한자 하나 하나 찾아 치는것은 어렵다 ㅜ.ㅜ

황창랑의 이야기는 증보문헌비고, 여지도서, 묵재일기, 현종실록등 조선의 여러 사료에 나오는데 나이만 틀릴뿐 내용은 하나의 책에서 베낀듯 똑같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본국검에 설명조차도 여지승람에 내용 그대로 옮겨온것이다. 이런것으로 보아 모두 여지승람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긴듯하다.
근데 이 이야기에 원본으로 보이는 여지승람에서는 황창랑 이야기를 안 믿고 있다.

[이첨(李瞻)이 고증(考證)하기를, "을축년 겨울에 내가 계림에 손이 되었더니 부윤 배공이 향악을 베풀어 나를 위로하는데, 탈을 쓴 동자가 뜰에서 칼춤을 추는 것이 있었다. 물어보았더니 말하기를 '신라에 황창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 15,6세쯤되어서 칼춤을 잘 추었는데, 왕을 뵙고 말하기를 신이 원하건대 임금을 위하여 백제의 왕을 쳐서 임금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하였다. 임금이 허락하였다. 곧 백제에 가서 시가에 춤추니 백제의 사람들이 담처럼 둘러서서 구경하였다. 백제 임금이 듣고 궁중에 불러 들여 춤추게 하고 구경하였다. 창이 임금을 좌석에서 쳐서 죽이고 황창은 드디어 좌우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듣고 울부짖다가 드디어 눈이 멀어졌다.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눈이 도로 밝아지게 하려고 꾀를 내어 사람을 시켜서 뜰에서 칼춤을 추게 하고 속여서 말하기를 '창이 와서 춤을 춘다. 창이 죽었다는 전일의 말은 거짓이다.'하니 어머니가 기뻐 울며 눈이 도로 즉시 밝아졌다 한다. 창이 어려서 능히 나라 일에 죽었으므로 향악에 실어서 전해내려온다고 하였다. 내가 일찌기 삼국사를 보니 모든 관직을 임명하거나 이웃나라를 침벌한 것은 다 씌어 있으며, 해와 별과 우뢰와 비의 변이 초목, 금수의 요괴에 이르기까지 기록하지 않은것이 없다. 나라의 임금이 적국의 아이에게 살해된 것과 어린 아이로서 적국의 임금에게 원수를 갚았다는 것은 다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역사에 실려 있지 않으니 진실로 의심할 만하다. 다만 열전에 관창의 일의 전말이 기재되어 있어서 그의 충의가 장하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통하게 한다. 이 춤추는 것은 반드시 관창일 것이다. 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무릇 적국에 대하여 변을 내려고 음모하는 자는 혹은 행상 가장하고 혹은 본국에서 죄를 지었다고 거짓말하는 등, 감언과 아첨하는 말로써 속여도 백제가 이미 신라와 더불어 적국이 되어 있었으니, 창이 응당 공공연하게 칼을 갖고 백제의 번잡한 시가의 큰 길 가운데에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였다면 백제의 사람들이 창을 붙잡아다가 장차 형을 갖추어서 고문하였을 것이다. 어찌 내버려 두어서 임금의 뜰에서 행악을 하게 하였겠는가. 이것은 인정과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옛삼으로 관창과 비겨서 가즈런히 논할 만한 자를 찾으니, 춘추에 대공 11년에 노나라의 소년 왕기(汪錡)가 공을 위하여 수레에 같이 탔다가 함께 국서의 나에 죽으매 공자가 말하기를 '능히 창과 방패를 잡고 사직을 호위하였으니 상으로 대우하지 아니함이 옳다.하였다. 의에 죽어 인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어려운 일인데, 동자로서 감히 이러한 일을 한 자는 홀로 왕기와 창에게서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잘못되어 있기에 변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창의 춤을 보는 자를 위하여 고증하고 또 따로 역사를 읽는 사람을 위하여 고증한다.'하였다.]

즉 그렇게 큰 사건이 어떻게 신라, 백제 기록에 없느냐 하는것이며 그 외에도 논리적으로 안 맞으니 황창랑이라는 신라인이 혹시 관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쓰고 있다.
자 여기서 황창랑 고사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계림(경주)에 한 소년이 탈을 쓰고 검무를 추는데 그 아이한테 들은거다. 즉 기록이나 어디에 있는것이 아니고 이첨이 경주 소년에게 들은것이 전부다. 그 이야기조차도 이첨조차 믿을수 없을정도로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한다.
당시까지 탈을 쓰고 추던 검무가 전해지고 있었으나 그 기원을 몰라 겨우 알아낸것이 이름 모를 소년에게서라니..
그것도 조사한 당사자조차 믿기지 않는 이야기고.. (이 검무는 대한제국 순종때까지 전해진듯하다)
어쩐지 황창랑 이야기가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만 있더라..
이유원도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시에서 관창의 이야기가 와전되어 황창랑 설화가 됐다고 한다.
나로서는 황창랑 설화가 관창의 이야기가 와전됐다는것조차 믿기지 않는다. 내용이 완전히 틀린데 어떻게 와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 여기서 본국검법 기원의 중요한 팩트인 황창랑 설화가 그 전제부터가 근거가 적은 얘기라는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본국검법이 신라 검법이라는 직접적인 얘기는 전혀 없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가?
바로 이제 황창랑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今因黃倡郞爲本國劍之緣起) 이 부분이다.
저 부분을 '이제 황창랑으로 하여금 본국검의 기원이 밝혀졌다'라고 해석하는데서 온것이다. 하지만 연기(緣起)와 기원은 분명히 다르고 저 글에 어디에도 황창랑이 본국검을 만들었다는 글이 없다. 본국검(本國劍)은 단지 우리나라 검법이라는 의미일것이다.
또 본국검을 속칭신검(俗稱新劍)이라고 하여 신검을 신라검의 줄인말이라고 해석하는데 신검은 말그대로 새로 만들어진 검법이라는 뜻이다. 만약 신라검술이라면 위에서 신라인을 라인(羅人)이라고 줄였듯이 라검(羅劍)이라고 했어야 할것이다.
신검이 새로운 검술이라는 증거는 다른데서도 찾을수 있다.
1598년 편찬된 무예제보(武藝諸譜)에는 본국검이 안 실려있다가 1759년 편찬된 무예신보(武藝新譜)에 본국검이 실린것으로 추정된다. 무예신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내용으로 그 내용을 짐작할수 있다.
또한 무과시험에 본국검이 편입된것이 1785년으로 그전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18세기경 본국검법이 창안된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하여 생긴지 얼마안된 검법이라는 이름으로 속칭 신검이라고 불리운게 분명하다.
이런 여러가지 사실로 보아 본국검법은 영조시대쯔음에 만들어진 새로운 검법이지 신라검법이라는 이야기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근거가 약하다.
이건 마치 태껸이 수박도의 같은 무술이라느니 1950년대 이후 일본의 가라테를 베낀 태권도가 삼국시대때 만들어진 전통무술이라고 속이는것과 별 다를바 없다.
우리나라 무술이 오래됐든 최근에 만들어졌든 우리나라 무술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그걸 굳이 역사를 조작하면서까지 끌어올리려는 이유가 뭔가? 맨날 역사왜곡이라고 일본과 중국을 욕하면서 우리는 그들앞에서 떳떳한지 한번 뒤돌아봐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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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빛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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