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2008/11/19 11:30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작가 김승옥은 그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명산물이 '안개'라고 소개하고 있다. 소설 속 무진은 그의 유년시절을 보낸  '순천과 순천만 앞바다와 그 갯벌'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순천의 짙은 안개를 본 적이 없다. 내가 갈때마다 안개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안개마저도 작가의 상상의 산물인지, 그도 아니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무진기행속 안개를 보고 싶었던 내 소망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소설속 광장에서 밀실로 향하는, 그들의 퇴로로 상징되는 바다로 뻗은 긴 방죽길은 외래식물이 잔뜩 뒤덮혀 걷기도 힘들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 방죽길을 걷지 않는다는 의미리라. 대신 방죽길 밑으로 난 흙먼지 나는 길로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며 지나갈뿐.. 방죽 너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갈대밭과 이곳을 중간 기착지로 삼는 여러 철새들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순천만의 갈대밭은 억지로 유지시키려고 만드는 금강하구의 갈대밭과 달리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다. 그동안 김승옥의 말대로 순천은 딱히 상징할 만한 특산물이나 아주 유명한 명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낙안읍성이나 선암사 정도가 있지만 얼마전까지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순천만과 갈대밭이 유명해져 주말이 되면 순천만 갈대밭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불과 5년전에 갔을때도 순천만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공간으로 빨리 매립하여 논으로 바꾸고 싶은 불필요한 존재였다. 아마도 자연의 대한 우리의 철학이 조금만 늦게 바뀌었어도 이곳은 매립되어 논이나 공장단지가 되어있었을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최근 유행하는 생태 관광이 순천만을 살린거라고 할까. 하지만 순천만은 다시 생태 관광이라는 이름하에 개발과 수많은 관광객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순천만에 가면 언제 생겼는지 순천만 생태공원이 들어서 있다. 그 곳을 따라 갈대밭을 거닐다 보면 용산이라는 곳에 오를 수 있는데 거기서 보는 순천만의 S자 물길과 갈대밭위로 떨어지는 낙조는 겨울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순천의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남아있는 읍성이다. 읍성안에는 수많은 초가와 기와집이 남아있고 그 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어  조선시대의 정취를 느낄수 있다. 예전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도 많았는데 시에서 관광자원의 목적으로 초가집으로 바꿔 지금은 볼수가 없다. 하지만 현대식 공법으로 만든 초가집들은 가까이서 보면 너무나도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떨칠수 없다. 읍성위를 반바퀴 걸으며 이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온듯한 느낌을 가져보는것은 순천에 온 또다른 재미다. 또한 이 맘때 가면 초가지붕 갈이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낙안읍성을 갈려면 소설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벌교읍을 지나가게 되는데 벌교는 보성군에 속한다. 그래서 낙안읍성이 보성군에 속하거나 또는 벌교가 순천시에 속한걸로 착각하기 쉽다. 아무튼 낙안읍성을 가게되면 벌교에 잠시 머무르며 '태백산맥'의 무대를 한번 거니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조선때만 해도 낙안읍성이 이 근방에서 제일 큰 읍이었으나 일제시대에 이르라 해안에 접한 벌교와 순천이 크게 발전하면서 낙안읍성은 쇠퇴되었다고 한다. 낙안읍성과 벌교, 그리고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 부근은 1948년 여순사건 당시부터 한국전까지 죄없는 많은 양민들이 대한민국 군.경과 반란군(후에 빨치산)에 의해 희생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작가 김승옥도 이 아픈 역사의 희생양으로 그의 소설 '내가 훔친 여름'에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러한 이유가 그가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이기도 하니 이문구, 이문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물론 세 사람이 택한 신념의 방향은 전혀 달랐지만.

낙안읍성을 지나 커다란 호수를 구경하며 가다보면 조계산이 나오고 고찰이 선암사와 송광사가 이 조계산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선암사에는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건지 내 사진첩속에는 선암사의 사진이 그다지 없고 무지개 다리 사진조차 없구나.. 너무나 많은 것을 보려고 한 욕심때문에 쉽게 지쳐있었나 보다. 그래서 많은것을 놓쳤고.
여행은 천천히 즐기며 봐야 한다는 것을 나는 또 다시 놓치고 말았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 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

주말 순천시내는 가을 갈대밭을 보려온 관광객에 의해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빠져나오는데 한시간이 걸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 나는 김승옥이 본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팻말을 보지 못했다. 내가 작가와 달리 이 곳에 와서도 나의 대한 부끄러움을, 천천히 바래져가는 삶의 모습을 아직 못 보았기 때문일까?

내가 본 순천의 안개는 사진상의 안개가 전부다.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김승옥은 순천의 풍경을 이렇게 말했다.

소설 속에서 윤희중이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고, 하인숙과 함께 걸었던 방죽길이 쭉 뻗어 있지만 걷기 힘들 정도로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이제 순천을 상징하는 코드가 된 갈대밭과 철새

쉴 틈도 없이 지나가는 관광선에 의해 일어나는 거센 물살이 순천만의 뻘과 갈대밭을 깎아내고 있다.

S자 물길의 일몰


낙안읍성 입구

성벽위에서 본 낙안읍성 전경

여름날의 낙안읍성은 어린 시절의 시골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 소화다리.


선암사.


순천만 갯벌위로 해가 지고 있다.

순천에 가면 흔히 볼수 있는 음식중 하나가 짱뚱어 요리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짱뚱어와 방게. 방게는 앞으로 걷는 게다. 순천의 또다른 먹을거리는 추워지기 시작하면 많이 잡히는 순천 갯벌의 꼬막요리다. 겨울에 순천에 들르시면 꼬막 정식 한번 드셔보시길.

예전에는 갈대밭이었던 곳이 이렇게 드넓은 논으로 바뀌었다.

순천만을 찾은 진객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흑두루미 군락

날아가는 흑두루미. 오른쪽 아래 갈색머리가 새끼.

고니의 우아한 착륙모습(천연기념물 201호)

고니


마도요. 80년대를 풍미했던 조용필의 노래 제목의 새다.

왼쪽의 산이 용산이다.

흑두루미가 순천만을 떠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길을 떠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진기행 - 순천을 가다  (0) 2008/11/19
선운사에 가본 적이 있나요?  (0) 2008/09/22
사라지는 근대의 풍경-소래포구  (4) 2008/09/02
그곳에 바다가 있었네. 시화호  (0) 2008/08/04
하동 화개장터  (0) 2008/03/18
Posted by 온빛누리

TRACKBACK http://mynury.com/trackback/12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  1 ... 2 3 4 5 6 7 8 9 10 ... 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