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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rch Results for '인문학 산책/역사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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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8/03/04 09:28, Filed under: 인문학 산책/역사 추적


올해 두 방송사에서 일지매가 드라마를 탄다고 한다. 10여년 전 장동건이 주연한 드라마 일지매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지?
그때의 장동건과 지금의 장동건을 비교하면 연기력이 참 일취월장한듯 하다..
얘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일지매 하면 고우영 원작의 만화 일지매가 유명하다. 한 드라마는 고우영 원작과는 다르다는데..
어차피 고우영도 자신이 밝혔듯이 이야기 전체가 100% 창작이었으니 뭔 상관이랴..
그렇다면 진짜 일지매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실존했던 인물일까?

일지매 얘기로 가장 유명한 기록이자 사실상 유일에 가까운 기록이 조선 순조 때 문인인 추재 조수삼(1762~1849)의 추재기이(秋齊紀異)에 실린 간략한 글과 한시뿐이다.

一枝梅 一枝梅盜之俠也。每盜貪官汚吏之財。自外來者。散施於不能養生送死者。而飛簷走壁。捷若神鬼。被盜之家。固不知何盜也。而乃自作朱標刻一枝梅爲記。盖不欲移怨於他也。
일지매는 도둑 중의 협객이다. 늘 탐관오리들의 뇌물을 훔쳐, 먹고살 길 막막하고 죽은 자를 장사지낼 힘조차 없는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나는 듯이 다니고 벽을 붙어다니니 날래기가 귀신같아서 도둑맞은 집에서는 어떤 도둑인지 몰랐다.
그리하여 스스로 붉은색으로 매화 한 가지를 그려 놓았다. 다른 사람이 의심받지 않게 해서였다.


血標長記一枝梅。施恤多輸汚吏財。不遇英雄傳古事。吳江昔認錦帆來。
매화 한 가지 증표로 남겨두고
탐관오리 재산으로 가난한 이 돕는다.
때 만나지 못한 영웅 예부터 있었으니
옛적에도 오강에 비단 돛 떠올랐었다.

마치 일지매가 실존했듯이 쓰여 있지만 추재도 밝혔듯이 일지매 이야기는 어릴 적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기록을 찾아보자.
홍길주(1786~1841)의 수여연필(睡餘演筆)에서 우리는 다시 일지매를 만날 수 있다.
수여연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재밌게 얘기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사실은 중국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성과 한음 이야기도 대부분 중국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는 진짜 지어낸 이야기다.)
거기서 일지매 얘기도 나오는데.

又如大盜名一枝梅者, 或謂之李貞翼公爲將時人, 或謂之張大將鵬翼時人, 后卻於歡喜寃家中見之.
또 큰 도적 중에 일지매라 하는 자를 두고 어떤 이는 정익공 이완이 포도대장을 할 때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장붕익이 대장 노릇할 때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나중에 환희원가(歡喜寃家)라는 책 속에서 이를 보았다.

라고 밝혔다. 즉 자신이 어릴 때부터 듣던 일지매는 사실은 중국의 환희원가(歡喜寃家)라는 책에 실린 글이라는 것이다.
환희원가는 청나라 때인 1640년에 쓰인 화본소설(話本小說)로 요즘으로 말하면 에로틱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 맨 마지막 회인 24회에 일지매공설원앙계(一枝梅空設鴛鴦計)라는 제목으로 일지매에 대한 두 가지 글이 실려 있다.
또한, 1632년에 쓰인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 39편에도 명나라 때 도둑 나룡이 나오는데 이 도둑을 일명 일지매라고 불렀는데 환희원가나 추재기이에 소개한 것처럼 그가 도둑질한 곳에 매화 그림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일지매 이야기도 명나라 때 쓰인 서호유람지여, 고금소해 등에 실린 '我來也'라고 쓰고 가는 도둑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듯하다.
아무튼, 일지매 이야기는 소설 속 가상의 인물 이야기며 이것도 중국에서 넘어온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장지연이 매일신보에 일지매 이야기를 실으면서 다시 등장한다. 장지연은 특이하게도 일지매의 말로도 전하고 있다.
일지매는 남의 재산을 훔쳐 나눠줘도 자신은 소유하지 않아 남의 집에서 밥을 빌어먹으며 고생하다 결국은 붙잡혀 죽는다며 결코 행복하지 못한 결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로도 계속 일지매 이야기는 살이 붙어 지금은 가지각색으로 변형된 일지매가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다.

일지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걸까? 나는 일지매에 대한 자료를 찾다 재미있는 기록을 발견했다.
숙종 때인 1716년 승정원일기 9월 4일자에 초복(初覆)에 죄인 일지매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기록이 나오는 것이다. 初覆이라 함은 죽을 죄를 지은 죄인에 대한 첫 번째 심리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일지매를 풀어주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왕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사에 기록된 유일 무일 한 일지매에 대한 글인데.. 여기서 말하는 일지매는 과연 누구를 뜻하는 걸까?
혹시 일지매가 정말로 실존했던 걸까? 아니면 일지매를 사칭한 악당일뿐일까? 더 이상 자료가 없기에 알 길이 없다..
하나의 수수께끼를 남기고 일지매에 대한 추적은 여기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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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2008/03/04 09:28 2008/03/04 09:28


Tag : 실존, 일지매
Response : 1 Trackback ,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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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지매 그는 어디에서 왔을까!

    Tracked from Shimum 2008/07/13 16:50 Delete

    일지매는 조선 순조 때 문인 위항시인 추재 조수삼(1762~1849)의 추재기이(秋齊紀異)에 짧은 한시형식으로 실려 있다. 추재기이(秋齊紀異)는 조선 후기 저잣거리의 중인 이하 계층의 사람 중에서 기이한 인물들을 모아 기록한 책으로 위항문학은 중인·서얼·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이 이루어낸 문학을 말한다. 一枝梅 一枝梅盜之俠也。每盜貪官汚吏之財。自外來者。散施於不能養生送死者。而飛簷走壁。捷若神鬼。 被盜之家。固不知何盜也。而乃自作朱標刻一枝梅爲記。盖不欲移怨..

  1. # 몽유애 2008/07/13 17:00 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일지매 문헌을 찾다가 조금 더 자세한 다른 분 글과 조금 가감하며 자세히 적었습니다.

    그리고 트랙백을 처음하는 터라 실수를했나봅니다.

    5% 아쉬운 일지매 이야기는 지워주세요

    제가 지울 줄 몰라서 ㅎㅎ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자료 많이많이 고맙습니다.

    원문 찾아보고 싶은데 거의 없더라구요...

    평온한 주말 되세요..

    1. Re: # 누리 2008/07/21 07:19 Delete

      늦었습니다. 요즘 블로그를 버려놓다시피 해서..
      원문 찾아 직접 번역했습니다. 저도 찾기 힘들어서 도서관에서 논문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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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6/11/24 21:48, Filed under: 인문학 산책/역사 추적


인터넷이나 방송들을 보면 본국검법(本國劍)이 신라의 검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검법이라고 한다. 어느곳도 본국검법이 신라의 검법이라는 것에 의문을 표한것을 못보았다.
본국검법이 신라때 검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20년전으로 당시에는 별로 인기 없던 검도를 학교에서 무조건 배워야 했는데 당시 검도 선생이 본국검법을 가르쳐주면서 신라의 검법이라고 한것이다.
(검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것은 나한일, 김정호가 창안한 해동검도가 TV를 통해 알려진 80년대 후반부터다. 당시 무풍지대라는 인기드라마에 나한일씨가 등장했고 이것이 상당한 선전효과를 거두었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검도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당시부터 의문시 되던것이 어떻게 신라의 검법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을까 하는것이었다. 삼국시대 역사서는 물론이요 제대로 된 문헌조차 남아있는것이 없는데 어떻게 검술을 적은 기록이 남아 있을까?

본국검법이 나온 문헌은 단 하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14년(1790년) 백탑파로 알려진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가 지은 책으로 특히 그림으로 무예를 나타난게 특징적이다.
이 책에 본국검법이 그림과 함께 나온다.

그럼 이 책에 실린 본국검에 대한 설명을 보자.

'여지승람에 이르기를 황창랑은 신라인이다. 전하는 말에는 나이 7세에 백제에 들어가서 시중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담을 이룬 것 같았다. 백제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불러서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창랑이 이 기회를 타서 왕을 찔렀다. 이로 인하여 백제국인들이 그(황창랑)을 죽이니 라인(羅人=신라인)들이 슬퍼하여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한다.라고 (여지승람에서)한다.
(중략)신라는 왜국과 이웃하여 그 검무가 분명히 전했을텐데 밝혀낼 수가 없다. 이제 황창랑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今因黃倡郞爲本國劍之緣起). (하략)'
역시 컴으로 한자 하나 하나 찾아 치는것은 어렵다 ㅜ.ㅜ

황창랑의 이야기는 증보문헌비고, 여지도서, 묵재일기, 현종실록등 조선의 여러 사료에 나오는데 나이만 틀릴뿐 내용은 하나의 책에서 베낀듯 똑같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본국검에 설명조차도 여지승람에 내용 그대로 옮겨온것이다. 이런것으로 보아 모두 여지승람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긴듯하다.
근데 이 이야기에 원본으로 보이는 여지승람에서는 황창랑 이야기를 안 믿고 있다.

[이첨(李瞻)이 고증(考證)하기를, "을축년 겨울에 내가 계림에 손이 되었더니 부윤 배공이 향악을 베풀어 나를 위로하는데, 탈을 쓴 동자가 뜰에서 칼춤을 추는 것이 있었다. 물어보았더니 말하기를 '신라에 황창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 15,6세쯤되어서 칼춤을 잘 추었는데, 왕을 뵙고 말하기를 신이 원하건대 임금을 위하여 백제의 왕을 쳐서 임금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하였다. 임금이 허락하였다. 곧 백제에 가서 시가에 춤추니 백제의 사람들이 담처럼 둘러서서 구경하였다. 백제 임금이 듣고 궁중에 불러 들여 춤추게 하고 구경하였다. 창이 임금을 좌석에서 쳐서 죽이고 황창은 드디어 좌우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듣고 울부짖다가 드디어 눈이 멀어졌다.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눈이 도로 밝아지게 하려고 꾀를 내어 사람을 시켜서 뜰에서 칼춤을 추게 하고 속여서 말하기를 '창이 와서 춤을 춘다. 창이 죽었다는 전일의 말은 거짓이다.'하니 어머니가 기뻐 울며 눈이 도로 즉시 밝아졌다 한다. 창이 어려서 능히 나라 일에 죽었으므로 향악에 실어서 전해내려온다고 하였다. 내가 일찌기 삼국사를 보니 모든 관직을 임명하거나 이웃나라를 침벌한 것은 다 씌어 있으며, 해와 별과 우뢰와 비의 변이 초목, 금수의 요괴에 이르기까지 기록하지 않은것이 없다. 나라의 임금이 적국의 아이에게 살해된 것과 어린 아이로서 적국의 임금에게 원수를 갚았다는 것은 다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역사에 실려 있지 않으니 진실로 의심할 만하다. 다만 열전에 관창의 일의 전말이 기재되어 있어서 그의 충의가 장하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통하게 한다. 이 춤추는 것은 반드시 관창일 것이다. 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무릇 적국에 대하여 변을 내려고 음모하는 자는 혹은 행상 가장하고 혹은 본국에서 죄를 지었다고 거짓말하는 등, 감언과 아첨하는 말로써 속여도 백제가 이미 신라와 더불어 적국이 되어 있었으니, 창이 응당 공공연하게 칼을 갖고 백제의 번잡한 시가의 큰 길 가운데에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였다면 백제의 사람들이 창을 붙잡아다가 장차 형을 갖추어서 고문하였을 것이다. 어찌 내버려 두어서 임금의 뜰에서 행악을 하게 하였겠는가. 이것은 인정과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옛삼으로 관창과 비겨서 가즈런히 논할 만한 자를 찾으니, 춘추에 대공 11년에 노나라의 소년 왕기(汪錡)가 공을 위하여 수레에 같이 탔다가 함께 국서의 나에 죽으매 공자가 말하기를 '능히 창과 방패를 잡고 사직을 호위하였으니 상으로 대우하지 아니함이 옳다.하였다. 의에 죽어 인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어려운 일인데, 동자로서 감히 이러한 일을 한 자는 홀로 왕기와 창에게서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잘못되어 있기에 변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창의 춤을 보는 자를 위하여 고증하고 또 따로 역사를 읽는 사람을 위하여 고증한다.'하였다.]

즉 그렇게 큰 사건이 어떻게 신라, 백제 기록에 없느냐 하는것이며 그 외에도 논리적으로 안 맞으니 황창랑이라는 신라인이 혹시 관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쓰고 있다.
자 여기서 황창랑 고사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계림(경주)에 한 소년이 탈을 쓰고 검무를 추는데 그 아이한테 들은거다. 즉 기록이나 어디에 있는것이 아니고 이첨이 경주 소년에게 들은것이 전부다. 그 이야기조차도 이첨조차 믿을수 없을정도로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한다.
당시까지 탈을 쓰고 추던 검무가 전해지고 있었으나 그 기원을 몰라 겨우 알아낸것이 이름 모를 소년에게서라니..
그것도 조사한 당사자조차 믿기지 않는 이야기고.. (이 검무는 대한제국 순종때까지 전해진듯하다)
어쩐지 황창랑 이야기가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만 있더라..
이유원도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시에서 관창의 이야기가 와전되어 황창랑 설화가 됐다고 한다.
나로서는 황창랑 설화가 관창의 이야기가 와전됐다는것조차 믿기지 않는다. 내용이 완전히 틀린데 어떻게 와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 여기서 본국검법 기원의 중요한 팩트인 황창랑 설화가 그 전제부터가 근거가 적은 얘기라는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본국검법이 신라 검법이라는 직접적인 얘기는 전혀 없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가?
바로 이제 황창랑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今因黃倡郞爲本國劍之緣起) 이 부분이다.
저 부분을 '이제 황창랑으로 하여금 본국검의 기원이 밝혀졌다'라고 해석하는데서 온것이다. 하지만 연기(緣起)와 기원은 분명히 다르고 저 글에 어디에도 황창랑이 본국검을 만들었다는 글이 없다. 본국검(本國劍)은 단지 우리나라 검법이라는 의미일것이다.
또 본국검을 속칭신검(俗稱新劍)이라고 하여 신검을 신라검의 줄인말이라고 해석하는데 신검은 말그대로 새로 만들어진 검법이라는 뜻이다. 만약 신라검술이라면 위에서 신라인을 라인(羅人)이라고 줄였듯이 라검(羅劍)이라고 했어야 할것이다.
신검이 새로운 검술이라는 증거는 다른데서도 찾을수 있다.
1598년 편찬된 무예제보(武藝諸譜)에는 본국검이 안 실려있다가 1759년 편찬된 무예신보(武藝新譜)에 본국검이 실린것으로 추정된다. 무예신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내용으로 그 내용을 짐작할수 있다.
또한 무과시험에 본국검이 편입된것이 1785년으로 그전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18세기경 본국검법이 창안된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하여 생긴지 얼마안된 검법이라는 이름으로 속칭 신검이라고 불리운게 분명하다.
이런 여러가지 사실로 보아 본국검법은 영조시대쯔음에 만들어진 새로운 검법이지 신라검법이라는 이야기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근거가 약하다.
이건 마치 태껸이 수박도의 같은 무술이라느니 1950년대 이후 일본의 가라테를 베낀 태권도가 삼국시대때 만들어진 전통무술이라고 속이는것과 별 다를바 없다.
우리나라 무술이 오래됐든 최근에 만들어졌든 우리나라 무술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그걸 굳이 역사를 조작하면서까지 끌어올리려는 이유가 뭔가? 맨날 역사왜곡이라고 일본과 중국을 욕하면서 우리는 그들앞에서 떳떳한지 한번 뒤돌아봐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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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2006/11/24 21:48 2006/11/24 21:48


Tag : 무예도보통지, 본국검, 본국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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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6/10/21 17:36, Filed under: 인문학 산책/역사 추적


요즘 드라마를 통해 고구려의 명장 양만춘이 자주 나온다. 물론 드라마를 역사로 믿어서는 안 된다. 역사서에 기록된 것도 깡그리 무시하고 작가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으니..
역사에 기록된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 정통성에 홀로 반발하여 결국은 연개소문의 군사하고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당나라 군대가 백만대군을 몰고 와 요동성, 백암성 등을 점령한 상태에서 홀로 싸워서 당군을 패퇴하게 하였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도 끝까지 남아서 당나라에 저항한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러니 안시성전투를 연개소문이 지휘하에 양만춘과 같이 싸우는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연개소문과 양만춘이 친구로 나오는 '대조영'은 몰상식의 극치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정사기록에는 안시성 전투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하면서 이 위대한 인물의 이름은 적고 있지 않으니 그냥 '안시성주'로만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가 천여 년이나 지난 조선후기에 이르러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萬春이라 한다. 한자부터 기록마다 다르다)이라는 이름이 안시성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후기 양만춘에 대한 기록은 성호사설, 동사강목, 열하일기 등 많은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을까? 천여 년만의 양만춘에 대한 기록이 발견이라도 된 걸까?
그래서 기록들을 하나하나 추적해가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추적하면 할수록 하나같이 어디서 양만춘이라고 했다. 하고 그걸 추적하면 또 어디서 들었다, 어디에 보았다, 이런 식으로 마치 러시아 인형같이 하나하나 헤쳐나가야만 했다.
결국, 그 귀결은 명나라 때 소설인 '당서연의唐書演義'와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로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기록 모두 조선 중기 윤근수의 월정만필에 나오는 기록으로

'안시성주安市城主가 당 태종唐太宗의 정병精兵에 항거하여 마침내 외로운 성을 보전하였으니, 공이 위대하다. 그런데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서적이 드물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 때의 사적史籍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임진왜란 뒤에 중국의 장관將官으로 우리나라에 원병援兵 나온 오종도吳宗道란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梁萬春이다. 당 태종 동정기東征記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얼마 전 감사 이시발李時發을 만났더니 말하기를, “일찍이 당서연의唐書衍義를 보니 안시성주는 과연 양만춘이었으며, 그 외에도 안시성을 지킨 장수가 무릇 두 사람이었다.”

고 하였다.

즉 임진왜란 때 온 오종도가 당태종동정기에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보았다는 얘기를 윤근수에게 했다. 그리고 이시발이 (아마도 명나라에 가서) 당서연의를 보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라고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두 문헌이 현존하지 않는듯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로서는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우리는 두 사람의 증언을 알아보자.
우선 당태종동정기에 대해서는 건너뛰고 건너뛰는 식의 얘기고 그 책이 어느 때 쓰인 것인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기록을 못 찾겠다.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그럼 당서연의는? 역시 관련기록을 못 찾겠다. 단지 '연의演義'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명나라 때 당나라 역사를 소설 식으로 쓴 책이라는 것만..(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양만춘은 지어진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면 이름없는 사람이라도 작가가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여기서도 그냥 안시성주라고 하지 않고 작자가 가상의 이름을 지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느냐면 천 년동안 이름도 전해지지 않던 사람이 유독 소설에서만 이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이전인 고려 때 쓰인 안시성 전투에 대한 많은 기록과 시에조차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더 후세에 정사도 야사도 아닌 소설에 등장한 이름이 신빙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다시 오종도가 말한 당태종동정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쩌면 동정기는 당서연의보다 나중에 쓰였을지도 모르고 당서연의가 소설이다 보니 널리 읽혀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거기에 삽입됐을지도 모른다. 또는 오종도가 당시로써는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당서연의로 인해 유명해진 후 다른 곳에서 삽입된 이름을 보거나 들은 것을 당태종동정기에서 봤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확한 근거가 없이 어디서 들었다 식에 기록은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게 역사학의 진리다.

이런 생각을 나만 가진 게 아닌듯하니

서유문의 무오연행록에는

세상이 전하되, “안시성주를 양만춘楊萬春이라.” 하니, 이 말이 '당서연의'라 하는 책에 있으나, '사기史記'에 나타난 일이 없으니, 족히 취하여 믿지 못하리라 하니, 이는 분명한 의논이라.
이라 했고

김시양의 부계기문에는

아깝게도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잃었는데, 명나라 때에 이르러 '당서연의'에 그의 이름을 드러내어 양만춘梁萬春이라고 하였다. 어떤 책에서 찾아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시성의 공적이 책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진실로 그의 이름이 잃어지지 않고 전하였더라면 '통감강목通鑑綱目'과 '동국사기東國史記'에 응당 모두 유실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수백 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연의衍義'에 나오겠는가. 거의 믿을 수 없다.

라고 했다.

이덕무 또한 청장관관서에서 이르기를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것은 '당서연의'에서 나온 말로, 호사자好事者가 그런 성명姓名을 만든 것이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고 했으니 조선시대 학자들도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고 하는 것을 못 믿었던 듯 하다.

이상의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만한 근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명나라 때 소설을 쓰고자 창작한 이름이 후세에 마치 진짜 이름인 듯이 알려지게 된듯하다.
위대한 고구려의 장수 이름이 양만춘이든 뭐든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역사학에서는 객관성과 정확성은 생명이다. 아직 남한사학계에서는 양만춘의 이름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아 항상 야사에 전하기를 이라고 토를 달지만 정말 야사에서라도 전하는지는 위에서 찾아봤듯이 의문이다. 그리고 북한학계에서는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안시성 성주 이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듯하다. (물론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지만...)

이로써 기나긴 추적이 끝났다.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기록을 뒤적였다. 기록을 뒤지면 뒤질수록 더 깊숙이 파고들어야만 했기에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나로서는 마치 추리소설같이 흥미진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계가 많았기에 틀린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료가 불충분했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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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2006/10/21 17:36 2006/10/21 17:36


Tag : 안시성, 양만춘, 연개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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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6/03/14 22:20, Filed under: 인문학 산책/역사 추적


군기 빠진 군대를 흔히 '당나라 군대'라고 한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지겹게 들었을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천년도 훨씬 전에 망한 나라 이름인 당나라 군대일까?
우리나라를 'Korea'라고 하는것은 '고려'에서 나온 말인것은 다 알것이다. 고려때는 대외무역이 활발해서 아랍 및 유럽까지 나라이름이 알려지면서 영어로 굳어졌고 그러므로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아직도 '고려'라고 부르는것이다.
그러듯이 일본에서도 아직도 중국을 '당(唐)'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청일전쟁과 중일전쟁때 쉽게 무너지고 비리만 저지르는 중국군을 보고 '당나라 군대'라며 비하하여 불렀다. 당연히 일제시대를 거치고 더구나 일본군 출신이 군을 장학한 우리나라는 구타와 함께 이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아직도 군기 빠진 군인이나 군대를 보면 '당나라 군대'니 '당나라 병사'니 하는것이다.
일본에서 중국을 당이라고 하니 중국에서 넘어온 것에는 앞에 '당(唐)'자를 붙인다.
우리가 흔히 뎀뿌라라고 하던 튀김도 일본은 요즘 가라아게(唐揚げ)라고 하고 종이우산은 가라카사(唐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근데 '당(唐)'의 일본어 발음이 '가라'라는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가라는 우리나라 옛국가인 가야(伽倻)의 다른 발음이다. 가야는 문헌에 따라 가야(加耶, 伽耶, 伽倻), 가라(加羅), 가량(加良), 가락(駕洛), 구야(狗邪, 拘邪), 임나(任那)등으로 불렀다. 가장 많이 불리는 가야도 당시에는 '가라'라고 발음했던걸로 추정된다. 중국어로도 당시에 가야를 가라로 발음했던걸로 보여 당시에 한자를 중국어 발음으로 불렀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것은 가라(唐)가 붙은 일본단어중에 당나라 이전에 넘어온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많다.
한반도를 거쳐 넘어간 청동을 가라가네(唐金)'라고 하고 모시를 '가라무시'라고 하는것들이다.
즉 한반도를 거쳐 간 문물에는 앞에 '가라'라는 말을 붙어 우리나라에서 넘어간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이 당나라가 세력이 커지고 중국과의 교류가 깊어지면서 중국을 가리키는 말로 바뀐것이다.
한국의 일본어 발음인 '간코쿠'도 '가라노쿠니(韓の國)' 즉 '한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쟁기도 일본어로 '가라스키'라고 하는걸보면 우리나라에서 건너간것이 분명하다.
일본어를 잘 알면 한번쯤 발음이 '가라'가 붙은 단어라든지 또는 글자에 '唐'이 붙은 단어중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을 찾아보는것도 재미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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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4 22:20 2006/03/14 22:20


Tag : 가라, 가야, 당나라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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