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를 가장 잘 표현한 김동리의 '역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 장터'의 이름이 높았고, 경상 전라 양 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개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물 장수들의 실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례 길에서 넘어오고, 하동 길에서는 섬진강 하류 해물 장수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간조기, 간고등어들이 들어오곤 하여, 산협하고는 꽤 은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개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恨) 많고 멋들은 진양조, 단가,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기다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 창극 신파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반드시 재주와 신명을 떨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갓 관습과 전례가 이 화개 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노래로 다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으나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화개장터를 찾으면 교실 2개 정도 크기의 마당과 대장간 하나가 있었을 뿐이어서 노래를 듣고 기대 속에 화개장터를 찾은 관광객들이 실망하고 돌아섰던 적이 있다.
이에 얼마 전에 복원한다고 초가지붕을 이은 집 몇 채 짓고 터도 넓혔으나 사실상의 상설 장터가 되었고 옛 장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대식 장터가 되어 버렸다. 차라리 예전 조용하고 작았던 장터가 더욱 그리운 것은 왜일까?
화개장터 한가운데 세워진 화개장터비.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래와 뒷면에는 화개장터 유래가 새겨져 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화개장터 노래 마지막 구절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위해 '전상도 경라도의 화개장터'로 작사되었는데 이 비에는 다른 버전인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로 새겨져 있다. 왜 전자의 곡을 안새겼을까? 아쉬울뿐이다.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골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 그림자와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추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 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물이었다. -김동리, 역마중에서-
화개장터 옆으로는 화개천 맑은 물이 쌍계사 쪽으로 흐르고 있다. 4월 초면 길가 십리 벚꽃길이 펼쳐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상춘객으로 붐빈다. 멀리 보이는 곳이 지리산이고 그 밑에 쌍계사가 위치하고 있다. 오른쪽이 화개장터. 몇 년 전에 갔을 때만 해도 화개장터나 벚꽃길이 사람이 이렇게 붐비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말에는 차 댈 곳이 없을 정도다. 사실 그다지 볼 것 도 없는 화개장터에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것은 역시 조영남의 노래 덕이 아닐까?
옛모습을 잃은 것은 화개장터뿐이 아니다. 장터에서 화개교를 건너 화개삼거리 앞 섬진강변에 있던 나루터도 2003년 준공된 남도대교로 인해 사라졌다.
강을 가로지른 줄을 당기며 하루 수십 차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넘던 나룻배는 지금 배만 덩그러니 남아 그때의 영화를 추억하게 할 뿐 줄 나룻배를 이어주던 줄은 사라진 지 오래고 거대한 남도대교 밑에서는 루어 낚시와 섬진강이 명물인 재첩 잡는 사람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화개장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 지역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곳 주변 음식점 가격은 비싼데 맛은 정말 없다. 경상도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정말 비싼 식사비 값을 못한다. 이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에게 들은 공통된 얘기다. 강을 건너면 전라남도 구례인데 전라도와 경상도의 음식 맛 차이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맛볼 수 있는 것도 여기의 독특한 경험이랄까? 차라리 화개 버스터미널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게 돈도 아끼고 입맛도 안 버리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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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 삭제
2008/04/07 09:10TRACKBACK FROM 정철상의 커리어노트부산에서 강의가 있었다. 다음날 목포 강의였다. 부산에서 숙박을 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한 승객이 지리산 부근에서 정류장 아닌 곳에 세워달라고 하신다. 보통 시골에서는 그냥 근처에 세워주신다. 그런데 이 기사 양반, 안 된다고 깐깐하게 나오신다. 일전에 그렇게 세워줬다가 전라도에서 낭패를 겪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라도쪽의 터미널에서 겪은 수모를 이야기한다. 손님을 기다리기 위한 주정차 시간도 10분도 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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