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1 17:36
요즘 드라마를 통해 고구려의 명장 양만춘이 자주 나온다. 물론 드라마를 역사로 믿어서는 안 된다. 역사서에 기록된 것도 깡그리 무시하고 작가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으니..
역사에 기록된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 정통성에 홀로 반발하여 결국은 연개소문의 군사하고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당나라 군대가 백만대군을 몰고 와 요동성, 백암성 등을 점령한 상태에서 홀로 싸워서 당군을 패퇴하게 하였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도 끝까지 남아서 당나라에 저항한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러니 안시성전투를 연개소문이 지휘하에 양만춘과 같이 싸우는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연개소문과 양만춘이 친구로 나오는 '대조영'은 몰상식의 극치다.)
역사에 기록된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 정통성에 홀로 반발하여 결국은 연개소문의 군사하고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당나라 군대가 백만대군을 몰고 와 요동성, 백암성 등을 점령한 상태에서 홀로 싸워서 당군을 패퇴하게 하였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도 끝까지 남아서 당나라에 저항한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러니 안시성전투를 연개소문이 지휘하에 양만춘과 같이 싸우는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연개소문과 양만춘이 친구로 나오는 '대조영'은 몰상식의 극치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정사기록에는 안시성 전투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하면서 이 위대한 인물의 이름은 적고 있지 않으니 그냥 '안시성주'로만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가 천여 년이나 지난 조선후기에 이르러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萬春이라 한다. 한자부터 기록마다 다르다)이라는 이름이 안시성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후기 양만춘에 대한 기록은 성호사설, 동사강목, 열하일기 등 많은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을까? 천여 년만의 양만춘에 대한 기록이 발견이라도 된 걸까?
그래서 기록들을 하나하나 추적해가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추적하면 할수록 하나같이 어디서 양만춘이라고 했다. 하고 그걸 추적하면 또 어디서 들었다, 어디에 보았다, 이런 식으로 마치 러시아 인형같이 하나하나 헤쳐나가야만 했다.
결국, 그 귀결은 명나라 때 소설인 '당서연의唐書演義'와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로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기록 모두 조선 중기 윤근수의 월정만필에 나오는 기록으로
'안시성주安市城主가 당 태종唐太宗의 정병精兵에 항거하여 마침내 외로운 성을 보전하였으니, 공이 위대하다. 그런데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서적이 드물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 때의 사적史籍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임진왜란 뒤에 중국의 장관將官으로 우리나라에 원병援兵 나온 오종도吳宗道란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梁萬春이다. 당 태종 동정기東征記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얼마 전 감사 이시발李時發을 만났더니 말하기를, “일찍이 당서연의唐書衍義를 보니 안시성주는 과연 양만춘이었으며, 그 외에도 안시성을 지킨 장수가 무릇 두 사람이었다.”
고 하였다.
즉 임진왜란 때 온 오종도가 당태종동정기에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보았다는 얘기를 윤근수에게 했다. 그리고 이시발이 (아마도 명나라에 가서) 당서연의를 보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라고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두 문헌이 현존하지 않는듯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로서는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우리는 두 사람의 증언을 알아보자.
우선 당태종동정기에 대해서는 건너뛰고 건너뛰는 식의 얘기고 그 책이 어느 때 쓰인 것인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기록을 못 찾겠다.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그럼 당서연의는? 역시 관련기록을 못 찾겠다. 단지 '연의演義'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명나라 때 당나라 역사를 소설 식으로 쓴 책이라는 것만..(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양만춘은 지어진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면 이름없는 사람이라도 작가가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여기서도 그냥 안시성주라고 하지 않고 작자가 가상의 이름을 지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느냐면 천 년동안 이름도 전해지지 않던 사람이 유독 소설에서만 이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이전인 고려 때 쓰인 안시성 전투에 대한 많은 기록과 시에조차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더 후세에 정사도 야사도 아닌 소설에 등장한 이름이 신빙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다시 오종도가 말한 당태종동정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쩌면 동정기는 당서연의보다 나중에 쓰였을지도 모르고 당서연의가 소설이다 보니 널리 읽혀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거기에 삽입됐을지도 모른다. 또는 오종도가 당시로써는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당서연의로 인해 유명해진 후 다른 곳에서 삽입된 이름을 보거나 들은 것을 당태종동정기에서 봤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확한 근거가 없이 어디서 들었다 식에 기록은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게 역사학의 진리다.
이런 생각을 나만 가진 게 아닌듯하니
서유문의 무오연행록에는
세상이 전하되, “안시성주를 양만춘楊萬春이라.” 하니, 이 말이 '당서연의'라 하는 책에 있으나, '사기史記'에 나타난 일이 없으니, 족히 취하여 믿지 못하리라 하니, 이는 분명한 의논이라.
이라 했고
김시양의 부계기문에는
아깝게도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잃었는데, 명나라 때에 이르러 '당서연의'에 그의 이름을 드러내어 양만춘梁萬春이라고 하였다. 어떤 책에서 찾아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시성의 공적이 책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진실로 그의 이름이 잃어지지 않고 전하였더라면 '통감강목通鑑綱目'과 '동국사기東國史記'에 응당 모두 유실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수백 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연의衍義'에 나오겠는가. 거의 믿을 수 없다.
라고 했다.
이덕무 또한 청장관관서에서 이르기를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것은 '당서연의'에서 나온 말로, 호사자好事者가 그런 성명姓名을 만든 것이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고 했으니 조선시대 학자들도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고 하는 것을 못 믿었던 듯 하다.
이상의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만한 근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명나라 때 소설을 쓰고자 창작한 이름이 후세에 마치 진짜 이름인 듯이 알려지게 된듯하다.
위대한 고구려의 장수 이름이 양만춘이든 뭐든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역사학에서는 객관성과 정확성은 생명이다. 아직 남한사학계에서는 양만춘의 이름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아 항상 야사에 전하기를 이라고 토를 달지만 정말 야사에서라도 전하는지는 위에서 찾아봤듯이 의문이다. 그리고 북한학계에서는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안시성 성주 이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듯하다. (물론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지만...)
이로써 기나긴 추적이 끝났다.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기록을 뒤적였다. 기록을 뒤지면 뒤질수록 더 깊숙이 파고들어야만 했기에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나로서는 마치 추리소설같이 흥미진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계가 많았기에 틀린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료가 불충분했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그러다가 천여 년이나 지난 조선후기에 이르러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萬春이라 한다. 한자부터 기록마다 다르다)이라는 이름이 안시성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후기 양만춘에 대한 기록은 성호사설, 동사강목, 열하일기 등 많은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을까? 천여 년만의 양만춘에 대한 기록이 발견이라도 된 걸까?
그래서 기록들을 하나하나 추적해가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추적하면 할수록 하나같이 어디서 양만춘이라고 했다. 하고 그걸 추적하면 또 어디서 들었다, 어디에 보았다, 이런 식으로 마치 러시아 인형같이 하나하나 헤쳐나가야만 했다.
결국, 그 귀결은 명나라 때 소설인 '당서연의唐書演義'와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로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기록 모두 조선 중기 윤근수의 월정만필에 나오는 기록으로
'안시성주安市城主가 당 태종唐太宗의 정병精兵에 항거하여 마침내 외로운 성을 보전하였으니, 공이 위대하다. 그런데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서적이 드물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 때의 사적史籍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임진왜란 뒤에 중국의 장관將官으로 우리나라에 원병援兵 나온 오종도吳宗道란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梁萬春이다. 당 태종 동정기東征記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얼마 전 감사 이시발李時發을 만났더니 말하기를, “일찍이 당서연의唐書衍義를 보니 안시성주는 과연 양만춘이었으며, 그 외에도 안시성을 지킨 장수가 무릇 두 사람이었다.”
고 하였다.
즉 임진왜란 때 온 오종도가 당태종동정기에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보았다는 얘기를 윤근수에게 했다. 그리고 이시발이 (아마도 명나라에 가서) 당서연의를 보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라고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두 문헌이 현존하지 않는듯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로서는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우리는 두 사람의 증언을 알아보자.
우선 당태종동정기에 대해서는 건너뛰고 건너뛰는 식의 얘기고 그 책이 어느 때 쓰인 것인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기록을 못 찾겠다.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그럼 당서연의는? 역시 관련기록을 못 찾겠다. 단지 '연의演義'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명나라 때 당나라 역사를 소설 식으로 쓴 책이라는 것만..(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양만춘은 지어진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면 이름없는 사람이라도 작가가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여기서도 그냥 안시성주라고 하지 않고 작자가 가상의 이름을 지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느냐면 천 년동안 이름도 전해지지 않던 사람이 유독 소설에서만 이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이전인 고려 때 쓰인 안시성 전투에 대한 많은 기록과 시에조차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더 후세에 정사도 야사도 아닌 소설에 등장한 이름이 신빙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다시 오종도가 말한 당태종동정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쩌면 동정기는 당서연의보다 나중에 쓰였을지도 모르고 당서연의가 소설이다 보니 널리 읽혀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거기에 삽입됐을지도 모른다. 또는 오종도가 당시로써는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당서연의로 인해 유명해진 후 다른 곳에서 삽입된 이름을 보거나 들은 것을 당태종동정기에서 봤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확한 근거가 없이 어디서 들었다 식에 기록은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게 역사학의 진리다.
이런 생각을 나만 가진 게 아닌듯하니
서유문의 무오연행록에는
세상이 전하되, “안시성주를 양만춘楊萬春이라.” 하니, 이 말이 '당서연의'라 하는 책에 있으나, '사기史記'에 나타난 일이 없으니, 족히 취하여 믿지 못하리라 하니, 이는 분명한 의논이라.
이라 했고
김시양의 부계기문에는
아깝게도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잃었는데, 명나라 때에 이르러 '당서연의'에 그의 이름을 드러내어 양만춘梁萬春이라고 하였다. 어떤 책에서 찾아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시성의 공적이 책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진실로 그의 이름이 잃어지지 않고 전하였더라면 '통감강목通鑑綱目'과 '동국사기東國史記'에 응당 모두 유실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수백 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연의衍義'에 나오겠는가. 거의 믿을 수 없다.
라고 했다.
이덕무 또한 청장관관서에서 이르기를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것은 '당서연의'에서 나온 말로, 호사자好事者가 그런 성명姓名을 만든 것이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고 했으니 조선시대 학자들도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고 하는 것을 못 믿었던 듯 하다.
이상의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만한 근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명나라 때 소설을 쓰고자 창작한 이름이 후세에 마치 진짜 이름인 듯이 알려지게 된듯하다.
위대한 고구려의 장수 이름이 양만춘이든 뭐든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역사학에서는 객관성과 정확성은 생명이다. 아직 남한사학계에서는 양만춘의 이름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아 항상 야사에 전하기를 이라고 토를 달지만 정말 야사에서라도 전하는지는 위에서 찾아봤듯이 의문이다. 그리고 북한학계에서는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안시성 성주 이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듯하다. (물론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지만...)
이로써 기나긴 추적이 끝났다.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기록을 뒤적였다. 기록을 뒤지면 뒤질수록 더 깊숙이 파고들어야만 했기에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나로서는 마치 추리소설같이 흥미진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계가 많았기에 틀린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료가 불충분했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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