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시절 정부는 서해 리아스식 해안을 모두 메워 매끄럽게 만들려는 엄청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 중 하나가 시화호 간척사업이었다. 그때부터 추진한 시화호 간척사업은 1987년 시작하여 1994년 끝났다. 하지만, 유람선이 떠다니게 할 시화호 사업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엄청난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곳에 살던 갯가, 바다 생물은 삶터를 잃었고 거기에 기대어 살던 주민들의 삶도 망처 버린 20세기 환경 대재앙 중 하나가 됐을 뿐이다.
바다는 사막이 되고 섬은 산이 되었다.
시화호를 가면 바다였던 곳은 소금먼지 날리는 사막이 되거나 갈대가 자라는 황무지만 보일 뿐이다. 거기에는 그곳이 한때는 바다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조개껍데기가 박혀 있을 뿐 이제는 바다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바다 생물이 사라진 그곳은 지금 수리부엉이, 너구리, 삵, 고라니 등 다른 육지 생물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개를 캐며 살아왔고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갔으며 갯벌 생물들은 육지에서 만들어낸 더러운 물질들을 정화해 바다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가진 임무를 말없이 묵묵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한때는 길을 걸으며 굴을 따먹고 섬에 들르면 동네주민이 무진장 잡히는 낙지를 안주로 술을 건네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에 나가면 숭어, 꽃게, 전어를 잡고 갯벌에서는 낙지, 바지락, 대합, 피조개를 잡았던 시절이 그곳에 있었다. 얼마 안 되던 과거였다.
사막은 모래만 있는 곳만 사막이 아니다. 이토록 삶의 원형이 훼손돼서 그곳에 살던 생명체, 그리고 그곳의 주민들이 만들어왔던 삶의 문화가 파괴된 것도 사막이다. 새로운 생명체들이 찾아왔다고 죽은 바다가 되살아난 것일까?
요즘 시화호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고니 등 각종 철새가 찾아오고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이 찾아온다고. 정말 시화호가 되살아난 것인가? 천만의 말씀.
생물다양성이 파괴된 것이 어찌 다시 살아난 것인가? 그곳에 살았던 수많은 바다 생물들, 갯생물들이 죽은 뒤 그 화석 뒤에 육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이 살아난 것인가? 원래 살았던 생명이 되돌아와야 하지 그것이 진정 살아난 것이 아닐까? 바다 생물 100이 살던 곳에 방조제를 지어 30으로 줄이고 육지생물이 들어와도 바다 생물 30이 100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곳 주민의 문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바다의 삶이 아닌 내륙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예전의 문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시화호가 되살아났다는 것은 시화호를 죽인 수자원공사 자신들의 잘못을 어떻게든 감추려는 사기일 뿐이다.
그리고 시화호의 교훈을 잊은 체 화홍호,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니 우리는 과연 언제쯤 이 무지에서 깨어날까?
마산포. 그곳에 바다가 있었네.
마산포는 제물포가 개항하기 전에 중국으로 가던 배가 떠나던 항구였다.
그래서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군이 상륙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통해 대원군은 청국으로 붙잡혀갔다.
'택리지'에 이르기를 "지세는 좌우로 개와 항구를 끼고서 바로 바다로 들어갔고, 수백 호나 되는 소금 굽는 집이 남쪽과 북쪽 바닷가에 별처럼 깔렸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사는 사람도 얼마 안 되고 소금 굽기는 사라진지 100년이나 지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제물포(현 인천)가 개항 후 급격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했지만 바다가 막힌 뒤 지금은 포도 농사가 주가 됐다. 마산포 일대는 포도밭이 넓게 퍼져 있다. 한때 갯벌이었던 곳은 지금 갈대밭이 되었고 농지로 바꾸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제부도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수익도 많이 거뒀다고 하지만 지금은 근처에 있는 경비행장에 갈려는 외지인만 지나치는 곳이 되어버렸다.
시화호가 개발 당시 주민들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겨울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오는 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는지 오히려 900여만 원의 보상금을 준다고 하기에 주민들은 시원하게 생각했지만 1년도 안 돼 후회를 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송산 포도로 유명한데 송산 포도의 원조가 이곳 마산포로 74년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80년대 후반까지 포도 재배하는 농가가 별로 없었는데 바다가 막힌 뒤로 포도가 이곳의 특산물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곳 주민들이, 그리고 이곳을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풍경은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밀려오던 옛 풍경이다.
비를 맞고 빗소리 따라 흔들리며
서성거리던 거리에서 거리를 지나
바다를 찾아갔지만
우리 사는 곳 언제나 비 내리기에
작은 포구
마산포에도 건너야 할 바다는 없구나
부서진 낮달처럼
하늘과 바다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서러움으로 웅크리고 있는
검은 갯펄의 녹슬은 폐선들
버려도 버려도 다 버리지 못하는
황량한 비내림에
바다도
바다도
한 폭의 그림조차 되질 못하는데
나는 어디에서 태어난 詩人이기에
이 작은 포구로 달려와 바다를 건너려 했는가
마산포에도 바다는 없었다
건너야 할 바다는 어디에도 없고
바다가 되고 싶은 꿈을 꾸는
젖은 섬 하나 가까이 누워서
물 끝 먼바다 소리를 빗소리로 전할 뿐이다
우리 사는 곳 어딘들
비 안오는 곳 있으랴
돌아가자
서성거리던 그 거리로 돌아가자
덧없이 비만 뿌려
어쩌다 부는 바람도 빗물로 날리기에
젖은 얼굴 가리고
미친듯이 춤이나 추자
시화호 안에 형도는 원래 무인도였으나 3.1운동후 쫓겨난 사람들이 어업에 종사하면서 유인도가 됐다고 한다. 가운데는 140미터의 계명산이 있었고 거기에는 네모꼴의 봉수대가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마고 할매가 쌓았다고 하는데 심술이 난 마고 할아버지가 발로 차서 한쪽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봉화대 밑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방조제를 만들기 위한 채석장으로 바뀌면서 이 중요한 문화유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가 시화호 개발로 얻은것은 바닷속에 잠겼던 공룡알뿐이 아닐까?
시화호의 풍경들...
그리하여 그곳에 살던 갯가, 바다 생물은 삶터를 잃었고 거기에 기대어 살던 주민들의 삶도 망처 버린 20세기 환경 대재앙 중 하나가 됐을 뿐이다.
바다는 사막이 되고 섬은 산이 되었다.
시화호를 가면 바다였던 곳은 소금먼지 날리는 사막이 되거나 갈대가 자라는 황무지만 보일 뿐이다. 거기에는 그곳이 한때는 바다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조개껍데기가 박혀 있을 뿐 이제는 바다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바다 생물이 사라진 그곳은 지금 수리부엉이, 너구리, 삵, 고라니 등 다른 육지 생물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개를 캐며 살아왔고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갔으며 갯벌 생물들은 육지에서 만들어낸 더러운 물질들을 정화해 바다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가진 임무를 말없이 묵묵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한때는 길을 걸으며 굴을 따먹고 섬에 들르면 동네주민이 무진장 잡히는 낙지를 안주로 술을 건네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에 나가면 숭어, 꽃게, 전어를 잡고 갯벌에서는 낙지, 바지락, 대합, 피조개를 잡았던 시절이 그곳에 있었다. 얼마 안 되던 과거였다.
사막은 모래만 있는 곳만 사막이 아니다. 이토록 삶의 원형이 훼손돼서 그곳에 살던 생명체, 그리고 그곳의 주민들이 만들어왔던 삶의 문화가 파괴된 것도 사막이다. 새로운 생명체들이 찾아왔다고 죽은 바다가 되살아난 것일까?
요즘 시화호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고니 등 각종 철새가 찾아오고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이 찾아온다고. 정말 시화호가 되살아난 것인가? 천만의 말씀.
생물다양성이 파괴된 것이 어찌 다시 살아난 것인가? 그곳에 살았던 수많은 바다 생물들, 갯생물들이 죽은 뒤 그 화석 뒤에 육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이 살아난 것인가? 원래 살았던 생명이 되돌아와야 하지 그것이 진정 살아난 것이 아닐까? 바다 생물 100이 살던 곳에 방조제를 지어 30으로 줄이고 육지생물이 들어와도 바다 생물 30이 100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곳 주민의 문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바다의 삶이 아닌 내륙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예전의 문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시화호가 되살아났다는 것은 시화호를 죽인 수자원공사 자신들의 잘못을 어떻게든 감추려는 사기일 뿐이다.
그리고 시화호의 교훈을 잊은 체 화홍호,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니 우리는 과연 언제쯤 이 무지에서 깨어날까?
마산포. 그곳에 바다가 있었네.
마산포는 제물포가 개항하기 전에 중국으로 가던 배가 떠나던 항구였다.
그래서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군이 상륙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통해 대원군은 청국으로 붙잡혀갔다.
'택리지'에 이르기를 "지세는 좌우로 개와 항구를 끼고서 바로 바다로 들어갔고, 수백 호나 되는 소금 굽는 집이 남쪽과 북쪽 바닷가에 별처럼 깔렸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사는 사람도 얼마 안 되고 소금 굽기는 사라진지 100년이나 지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제물포(현 인천)가 개항 후 급격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했지만 바다가 막힌 뒤 지금은 포도 농사가 주가 됐다. 마산포 일대는 포도밭이 넓게 퍼져 있다. 한때 갯벌이었던 곳은 지금 갈대밭이 되었고 농지로 바꾸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제부도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수익도 많이 거뒀다고 하지만 지금은 근처에 있는 경비행장에 갈려는 외지인만 지나치는 곳이 되어버렸다.
시화호가 개발 당시 주민들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겨울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오는 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는지 오히려 900여만 원의 보상금을 준다고 하기에 주민들은 시원하게 생각했지만 1년도 안 돼 후회를 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송산 포도로 유명한데 송산 포도의 원조가 이곳 마산포로 74년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80년대 후반까지 포도 재배하는 농가가 별로 없었는데 바다가 막힌 뒤로 포도가 이곳의 특산물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곳 주민들이, 그리고 이곳을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풍경은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밀려오던 옛 풍경이다.
비를 맞고 빗소리 따라 흔들리며
서성거리던 거리에서 거리를 지나
바다를 찾아갔지만
우리 사는 곳 언제나 비 내리기에
작은 포구
마산포에도 건너야 할 바다는 없구나
부서진 낮달처럼
하늘과 바다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서러움으로 웅크리고 있는
검은 갯펄의 녹슬은 폐선들
버려도 버려도 다 버리지 못하는
황량한 비내림에
바다도
바다도
한 폭의 그림조차 되질 못하는데
나는 어디에서 태어난 詩人이기에
이 작은 포구로 달려와 바다를 건너려 했는가
마산포에도 바다는 없었다
건너야 할 바다는 어디에도 없고
바다가 되고 싶은 꿈을 꾸는
젖은 섬 하나 가까이 누워서
물 끝 먼바다 소리를 빗소리로 전할 뿐이다
우리 사는 곳 어딘들
비 안오는 곳 있으랴
돌아가자
서성거리던 그 거리로 돌아가자
덧없이 비만 뿌려
어쩌다 부는 바람도 빗물로 날리기에
젖은 얼굴 가리고
미친듯이 춤이나 추자
황인철의 시 <마산포에도 바다는 없었다>
형도의 사라진 봉수대시화호 안에 형도는 원래 무인도였으나 3.1운동후 쫓겨난 사람들이 어업에 종사하면서 유인도가 됐다고 한다. 가운데는 140미터의 계명산이 있었고 거기에는 네모꼴의 봉수대가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마고 할매가 쌓았다고 하는데 심술이 난 마고 할아버지가 발로 차서 한쪽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봉화대 밑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방조제를 만들기 위한 채석장으로 바뀌면서 이 중요한 문화유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가 시화호 개발로 얻은것은 바닷속에 잠겼던 공룡알뿐이 아닐까?
시화호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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